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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Jan 04. 2017

고기반찬

내 비겁하고 잔인한 식성에 대하여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밥을 저어 주세요.'

번쩍 눈이 뜨인다. 창 밖은 어둡고 내가 누워있는 방 안을 비롯해 집 안은 조용하다.

오직 한 곳, 부엌만은 제외한 채 말이다. 이른 시간, 집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그곳에서

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아직 반찬 내놓는 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니 5분은 더 잘 수 있겠네.'


다시 눈을 감는데 1초, 다시 눈을 뜨는 데는 1초 같은 5분.

덜컥, 탁. 하는 반찬 그릇 내어놓는 소리가 알람처럼 울린다.

"밥 먹어라."

"아으으으."

나는 제대로 된 대답도 생략하고 밤새 데워진 이불에 몸을 부대낀다. 

여기까지 새로 2분.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 밤새 온 알림을 확인하는데 또 3분.

"나오래도!"

"예, 예. 갑니다요."


집은 넓지 않아 방에서 부엌까지 다섯 걸음이면 족하다. 

부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밥상을 살핀다. 

깍두기, 김, 배추김치, 시금치, 북엇국, 흰쌀밥.


"반찬이 이게 다야?"

"뭐가 문젠데?"

"내가 무슨 사슴이야? 반찬에 고기가 없잖아, 고기가."

"어떻게 사람이 맨날 고기만 먹고 사니?"


"아니 그래도 반찬이 이건 너무하잖아. 배추김치나 깍두기나 똑같은 김치지."

"야, 너는 호강에 뻗친 줄 알아. 매일 새 반찬으로 밥상 차리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니? 엄마 어렸을 때는.."

"영양실조로 죽으면 다 엄마 때문이야."


시끄럽던 부엌은 어느새 조용해진다. 수저 드는 소리를 시작으로

밥알 씹는 소리, 깍두기 베어 무는 소리, 뜨거운 북엇국을 호호 부는 소리만 개운치 않게 흘러나온다.


"밥 남긴다."

"왜, 한 숟가락만 더 먹지."

"고기반찬이 없어서 밥이 안 넘어가네."

"말을 꼭 싸가지없게 해요. TV에서 보니까 사람이 고기만 먹으면 육식동물처럼 포악해진대."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이건 좀 새로운 전술인데. 그래 봤자 또 어디 종편 채널에서 나이 먹은 탤런트들 모아 놓고 육식의 위험성을 떠들어 댔겠지. 이승탈출 넘버원이랑 다를 게 뭐야. 결국 끝에 가서는 블루베리니, 아로니아니, 온갖 듣도 보도 못한 풀때기들 팔아 재끼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 방송만 나오면 그 날 마트 가격이 배는 오른다더라.


"너 싸가지없고 고집 센 거 다 고기 많이 먹어서 그런 거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오늘따라 엄마는 강하게 나온다. 그간의 반찬 투정에 맺힌 게 좀 많았나 보다.


"자식새끼 오냐오냐 키워놔 봤자 소용없어. 커서도 부모 잡아먹으려 든다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육식동물이다. 

엄마는 작고 여린 초식동물. 나는 그런 엄마를 이기지 않고는 못 사는 비겁한 짐승.


"어디 밖에 나가서 그렇게 투정해봐라. 아주 혼쭐이 날 걸."

"밖에서는 안 그러거든요."

"그럼 집에서는 왜 그래?"

그게 바로 내가 비겁한 짐승인 이유다. 밖에서도 내가 육식동물이던가?

온갖 점잔을 빼다가 사냥은 사냥대로 실패해 놓고 만만한 친구와 가족들에게나 무딘 이빨을 드러낸다.


"내일은 계란 후라이 해 줄 게."

계란 후라이. 그것이 이번 사투의 타협점이다. 육식을 하고 싶어 하는 어린 새끼를 달래기 위한 방책.

채소는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하던 고기반찬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의 것.


"엄마 편할 대로 해."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 아침상에는 계란 후라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나의 비겁하고 잔인한 식성을 대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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