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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Mar 01. 2017

졸업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글쓰기개론 9주차 '졸업'을 주제로 쓴 글입니다>


죽는 상상을 한다. 목을 매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커터칼로 손목을 긋거나 양잿물을 들이켜는 것은 상상만으로 아프다.

나는 아프지 않게 죽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좀처럼 그려지질 않는다.


아까는 군홧발에 머리를 밟혔다.

아직 짬이 남은 식판에 머리를 박고

나는 뭉개지는 발음으로 연신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딱딱한 군홧발 위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뭘 잘못했는데?


한 고등학교 교실을 떠올린다.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곳에서도 똑같이 밟는 사람과 밟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언제나 밟히는 사람이었다.

뺏기고, 맞고, 무릎 꿇는.

내가 기다리는 것은 오직 졸업식,

그 날은 내게 일종의 해방절이었다.


졸업식 날이면 엄마는 꽃다발을 들고 교실 뒤 편에 서 있었다.

나는 엄마가 혹시라도 나를 찾지 못할까 연거푸 뒤를 돌아봤다.

촌스럽게 빛바랜 털옷을 입은 엄마.

나는 그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나는.


야, 이 새끼야. 네가 네 입으로 잘못했다며.

뭘 잘못했냐고 묻잖아, 씨발년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나는 모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 말대로 '잘 하는' 것인지.


변변한 상장 하나 없는 내가 졸업장을 받아 올 때면

엄마는 언제나 잘했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받아 온 졸업장들은 서랍장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언제 했는지 빳빳이 코팅이 되어 있는 채로.


어휴, 병신 같은 새끼. 매사에 얼타는 꼬라지 하고는.

너같이 사람 구실 못하는 새끼는 나가 뒤져야 돼.

야, 듣고 있냐? 들었으면 대답을 해야 될 거 아냐, 새끼야.


졸업하는 상상을 한다. 졸업식도 하고 졸업장도 받는다.

엄마는 꽃다발을 들고 나를 지켜본다.

빳빳한 A4용지처럼 새하얀 꽃다발.

엄마는... 운다, 울 것이다. 어쩐지 가슴이 아프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졸업을 상상하지만 좀처럼 그려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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