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세상의 진실을 알아버렸습니다. 제가 알아낸 비밀을 지금 여기에 고백하려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세상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군가 제 삶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다른 사람들이 제 마음속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 말이죠.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알 수 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이상했던 순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루는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절친한 친구를 만나 신나게 떠들어대던 때였습니다. 그래, 그렇지 라며 서로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 불쑥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겁니다. 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꺼낼지 다 알고 있다는 느낌.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속아준다는 기색. 마주 보고 있는 눈과 눈 사이로 그 불편하면서 어색한 기운이 스치듯 지나가는 찰나가 분명 있었던 겁니다. 정확히 그것을 뭐라 표현할지는 모르겠지만, 제 맞은 편의 사람이 무언가 지금 나를 속이고 있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무언가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우리 사이에 있다는 것도요. 나는 술집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어요. 대부분은 태연한 척 자기들 볼 일을 보는 시늉을 했지만, 나는 확신합니다. 그건 연기였어요. 혹시나 내가 진실을 알아버린 걸까 당황하는 기색을 내비치던 구석 테이블의 여성, 그리고 포스기 앞에서 나를 예의 주시하던 알바생의 눈빛. 나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나를 속이고 있다는 걸요.
'사토라레'라는 만화책이 있었고, '트루먼쇼'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머릿속 생각이 남들에게 텔레파시처럼 전해지는 사토라레, 자신이 TV쇼의 주인공인 것도 모른 채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당하던 트루먼. 그것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왜 저는 이제야 눈치챈 걸까요. 저에게 어떻게든 진실을 전하려는 은밀한 시도가 있어왔던 걸요. 술집에서 만난 그 친구 역시 제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비록 친구 역할을 하기 위해 제게 접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죄책감을 느낀 겁니다. 제게 말하고 싶었던 거지요. 이 바보야, 너는 지금 속고 있는 거야. 그리고 저는 비로소 그 동정과 연민이 뒤섞인 눈빛의 실체를 읽어낸 겁니다.
뒤늦게나마 진실을 알고 나니 설명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헤어진 옛 연인이 생각나는군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달콤한 망상에 젖어있던 때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이에는 치열한 이해가 사라지고 습관적 배려만이 남더군요. 연애의 막바지에서 우리는 마치 격리 병동에 수용 중인 1급 보호 대상자를 대하듯, 서로가 서로를 관성에 따라 상대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요.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낭만적 우연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우리의 첫 만남부터, 있을 수 없는 비극과도 같았던 이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에 따라 돌아갔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아버린 걸까요. 아무 의심 없이 살아온 지난 제 모습들이 생각나 지금 저는 견딜 수 없이 괴로울 뿐입니다.
유독 제 주변에 이사 가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제 마음의 소리에 적응을 하지 못했거나 그게 아니면 누군가를 속이고 연기하며 살아가는 삶에 지쳤던 것일 테지요. 이러한 사실을 저로 하여금 눈치채게 해 준 친구나 연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두운 지하실 같은 곳에 끌려가 그들의 안일했던 행동에 대해 온갖 문초를 당하진 않았을까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도, 선생도, 의사도, 모두 믿을 수 없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제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옵니다.
어쩌면 지금 상황실에서는 빨간 불이 켜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을 알아버린 제가 어떤 돌발행동을 하진 않을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겠지요. 지금 당장 부엌 찬장에서 식칼을 가져와 타자를 치고 있던 제 손을 내려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시뻘건 피 대신에 미끈한 기름이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닐까요. 지켜보던 그들은 즉시 세트장 안으로 달려 들어와 제 팔을 도로 봉합해 놓고 제 기억을 사고 이전으로 되돌려 놓겠지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생을 살아가는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손이 떨리고 목이 탑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셔야겠습니다.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가야겟ㅅ습니다. 부엌에 가야, 그래야, 나는, 물을 꺼내ㅕㄹ, 찬장을 열어, 날카로운., 찾을 겁,니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