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우 Sep 14. 2015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갱스터 랩의 위대한 계보

1987년 발매된 이문세의 4집 앨범에는 ‘어허야 둥기둥기’라는 건전가요가 있었다. ‘어허~야 둥기둥기 우리 동네 꽃동네~’ 하는 구성진 가락은, 주옥 같은 트랙들에 푹 빠져 있던 나를 말 그대로 ‘확 깨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음반을 발표할 때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를 넣어야 했다. 건전가요에는 노래를 통해 정권을 홍보하고 대중들의 사상을 교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대중음악까지 국가가 통제하던 시절에 AFKN을 통해 접한 랩 음악은 충격 자체였다. 가사 중에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욕설(Four Letter Word)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통쾌한 맛을 선사하였다. 디제이의 스크래치 소리는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억압과 통제의 사회에서 제도권의 획일적인 교육을 받던 나에게 랩 음악은 숨 쉴 수 있는 일탈의 기회였다.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그 시절의 서부 갱스터 랩의 세계를 개척한 그룹 N.W.A(Niggaz with Attitude, 영화의 자막에서는 ‘까칠한 흑형들’로 번역)의 결성부터 해체까지를 다루고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려면 직업을 가지라는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서도 DJ의 꿈을 버리지 않던 닥터 드레(Dr. Dre). 클럽에서 댄스곡이나 트는 일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새로운 음악을 하기 위해 마약 판매상이던 이지 E(Eazy-E)를 끌어들인다. 이지 E의 자본을 기반으로 아이스 큐브(Ice Cube), DJ 옐라(DJ Yella), 엠씨 렌(MC Ren) 등의 멤버들이 뭉쳐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N.W.A는 빈민가 컴턴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거리의 폭력, 범죄, 여성에 대한 무시와 혐오 등으로 가득한 가사를 거칠게 내뱉으며 ‘배드보이(Bad Boy)’ 이미지의 언행을 일삼는다. 당시의 동부 하드코어 랩이 다소 교훈적이고 흑인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N.W.A의 음악은 동부 하드코어 랩의 폭력과 공격성에 쾌락적이고 향락적인 요소들을 더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의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듣기 민망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그 음악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흑인이어서 차별받던 그들은 N.W.A의 랩 음악을 통해 위안을 얻고 분노를 표출했다.


엄청난 성공 이후 N.W.A 멤버들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음악 영화의 전형적인 플롯을 따르게 된다. 영원한 우정을 다짐했던 멤버들은 돈, 섹스, 몰락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갈등하고 헤어지고 각자의 길을 걷는다. 그러한 과정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인물과 더욱 성숙한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쎄시봉’이 유행하고, ‘토토가’가 대박을 친 것처럼 이 영화에도 복고의 아련함이 있었다. 당시의 음악을 비롯해 지금까지 힙합 씬에서 거물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초창기 모습을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자정 무렵, 200여 석의 상영관에서 서른 명 남짓이 옹기종기 모여 비트를 타며 영화를 보는 경험은 랩 음악을 처음 듣던 그때처럼 신선한 일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앤트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