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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Sep 18. 2015

반칙왕

아름답고 처절한 복면희극왕

링과 현실


영화 속에는 사무실과 사각의 링이라는 두 개의 공간이 등장한다. 주인공 임대호는 그 두 공간을 넘나들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대다수 소시민들의 애환을 그려 낸다. 링보다 더 살벌하고, 온갖 부조리와 반칙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사무실. 그곳에서 임대호는 나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는 강해지기 위해 레슬링을 시작한다. 그가 정말 원하는 것이 실현되는 장소이므로, 링 위에서 임대호는 활기가 넘친다. 마지막에 가서는 반칙 캐릭터로 설정된 자신의 처지마저 극복하고, 부조리와 맞서 대결을 벌일 정도로 링 위에서 그는 자신감을 회복한다. 그러나 끝까지 그는 그의 상사가 걸어 오는 헤드락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는 현실 속에서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임대호는 링 위에서보다 더 많은 상처를 사무실 속에서 받는다. 또한 반칙왕인 임대호가 링 위에서 처절하게 쓰러지는 것과는 달리, 사무실에서는 부조리를 행한 이들이 살아남는다. 마지막의 월미도 신에서 이러한 먹이사슬은 더욱 선명해진다. 레슬링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임대호는 부지점장과 대결을 위해 맞선다. 그때, 하늘에서 내리는 눈. 임대호는 그것을 보고 가벼운 탄성을 지른다. 그처럼 진지해야 할 순간에도 눈을 보고 기뻐하는 순수함이 있기에, 임대호는 현실 속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다. 이미 현실은 생존만이 미덕으로 남은 정글이 되었기에…….



웃음과 처절함

 

이 영화는 정말 무지하게 웃긴다. 극장에선 관객들의 웃음소리 때문에 대사 일부분을 놓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엔 처절함이 배어 있다. 마지막 유비호와의 시합에서 임대호는 정말 멋지게 공중제비를 돌아 드롭킥을 날린다. 그러나 그 공격은 헛방에 그치고, 그는 번번이 유비호의 일격을 받고 만다. 이 짧은 순간의 반전이 웃음을 만들고, 그 웃음은 임대호의 처절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수없이 좌절을 반복하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임대호라는 캐릭터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설정은 작품이 황당함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소재만 놓고 본다면 만화에 가까운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가문의 영광’ 류가 웃기긴 하지만, 그 웃음이 가벼우며 전체적인 이야기는 소위 “말도 안돼” 식의 허구의 느낌을 준 것에 비하자면, ‘반칙왕’의 웃음은 진일보한 것이라 칭찬할 만하다. 



화려한 영상미와 신나는 음악 


유비호와의 시합 부분에서 포토소닉 4ER이라는 특수 카메라로 찍은 몇 장면들은 정말 돋보였다. 김지운 감독의 말을 빌리면, 그는 ‘Radio Head’와 ‘Spice Girls’의 뮤직 비디오의 초고속 촬영 장면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영상을 통하여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레슬링 장면을 찍어 낸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렇게 멋지게 잡은 장면 뒤에 이어지는 상황마다 주인공이 상대편의 공격을 받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웃기고, 처절한가. 

또 한 가지 영화의 흥을 돋우는 요소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이다. 주제곡인 ‘사각의 진혼곡’은 폴카의 리듬에다 꽹과리 장단까지 뒤섞은 흥겨운 퓨전 음악이다. 장날에 서는 유랑 극단의 공연이나 서커스에 어울릴 만한 촌스런(?) 비트는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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