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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Sep 28. 2015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우연과 반응이 어우러진 인생의 맛

사람들은 인생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실재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8회 만루 찬스에서 대타를 기용하지 않은 것이 ○○팀의 패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구 중계를 보다 보면,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경기가 끝난 현재의 관점에서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요인만 찾아내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행위는 과연 옳은가? 대타를 기용했다면 무조건 안타를 쳤을까? 상대편은 대타로 나온 선수에 강한 투수를 교체 선수로 세우지 않았을까? 대타가 기용되었다면 분명 상황은 예측할 수 없게 변했을 것이고, 그 결과도 현재와는 달랐을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현재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양상을 보여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고 말하는 것, 즉 현재의 관점에서 이전의 일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일의 부질없음을 느끼게 한다.


작품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 등은 같다. 자신의 영화 특강을 수원에서 열게 된 영화감독 함춘수는 실수로 수원에 하루 일찍 내려간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찾은 행궁에서 윤희정이라는 화가를 만난다. 둘은 희정의 작업실에 가서 희정의 그림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스시집에서 소주를 마신다. 희정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두 사람은 술을 더 마신다.


이와 같은 스토리라인에서 가지를 치는 구체적인 인물의 대화와 행동은 각 장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그 미세한 차이가 만들어 내는 인과관계에 따라 플롯의 변주를 음미하다 보면, 우리의 현재는 우연한 일들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 채워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하나의 요소만 떼어 내 그것을 대치하더라도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대치물이 투입되는 순간 주변의 상황은 그것의 영향으로 또 달라지게 될 것이니까.


김치찌개를 떠올려 보자. 김치와 돼지고기, 두부 등의 재료는 냄비 속에서 한몸이 되는 순간 본래의 맛과는 다른 찌개로서의 맛을 내게 된다. 여기서 돼지고기 대신 참치를 넣게 되면, 찌개는 또 다른 맛을 내게 된다. 단순히 참치는 맞고, 돼지고기는 틀리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다. 맛이 서로 다를 뿐이니, 상황 따라 취향 따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영화의 1장에서처럼 나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2장에서처럼 객관적인 시점에서 나의 주변을 살펴보는 것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술에 취한 정도에 따라, 솔직함의 정도에 따라 나의 행동이 달라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반응도 달라진다. 나와 세계가 어우러져 그때그때 새로운 맛이 나는 인생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을 모두 붙여 쓴 것에서도 모든 것이 뒤엉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인생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국어에서 띄어쓰기는 낱말을 단위로 하되, 둘 이상의 낱말이 합쳐서 한 뜻의 낱말이 된 말(복합어)은 붙여 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나와 너, 지금과 지금이 아닌 세계, 행동과 반응, 원인과 결과 등이 서로 구분 없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복합어로 인식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분명히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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