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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Oct 05. 2015

피에타(Pieta)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현실을 말하자면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많은 상인들이 살길이 막막해졌다.

청계천 상권에 있던 상인들에게 그 보상으로 가든파이브에 입주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는데, 그곳에 입주하려면 2~3억을 더 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그들은 인공하천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영화 속 이야기에서는


사채로 300만 원을 쓴 상인은 한 달 만에 10배의 이자를 물어야 했다.

갚기가 어려워질 때에 ‘강도’가 나타나 그들을 ‘병신’으로 만들고 보험금으로 빚을 갚게 한다.

남의 돈 쓰고 “설마 어떻게 하겠어?” 하는 사람들을 쓰레기라고 말한다.

빚은 어찌 갚았으나 병신이 된 그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쓰레기처럼 살아간다.


‘강도’의 엽기적인 행각은 관객을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고상한 모양새로 우리들의 목을 옥죄어 온다.

오직 ‘자본’의 논리로 쓰여진 장부와 계약서의 지시에 따라서...

무엇이 더 고통스럽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나는 분간이 안 된다.

적나라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현실 감각이 불어넣어 준 상상력 덕에 속이 울렁거리고 소름이 끼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모성’이 사라져 가는 시대.

신에게 우리를 구원해 줄 자비를 기도하는 모성이 사라져 가기에 우리는 오로지 ‘돈’을 무기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위로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외롭고 이기적인 ‘혼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럴 때일수록 사랑이 절실하다.

돈이 그런 것처럼 ‘사랑’도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다.


돈에는 복수가 있지만, 사랑에는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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