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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Oct 06. 2015

대니 콜린스

오늘 우리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음원 사재기 공장이란 게 있었다. 수백에서 수천 대의 스마트폰으로 음원을 사들여 인기 순위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대중들이 음원들을 자연스레 선택할 것이기에 그리 했을 것이다. 대중들의 욕망은 음악 본연의 가치를 지우고, 음악을 소모품으로 전락시킨다. 한 번 듣고 리스트에서 삭제하면 그만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아티스트는 무엇을 얻게 될까?


댄 포겔맨 감독의 영화 <대니 콜린스>에서  대니(알 파치노 분)는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일찍이 가이 델로치(닉 오퍼맨 분)가 인터뷰에서 성공을 장담할 정도로 훌륭한 음악성을 지닌 아티스트였다. 독특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정말 전 세계적인 인기 가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에도 흥이 나지 않을 정도로 권태롭다. 생일 파티라는 구실로 또 술과 마약을 즐기는 악순환의 삶. 흥청망청한 생일 파티가 끝나갈 무렵, 그는 매니저이자 친구인 프랭크(크리스토퍼 플러머 분)로부터 놀라운 선물을 받는다. 자신이 음악을 하는 데 영감을 불어넣어 준 존 레논이 40년 전에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받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건,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욕망에 오염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꿈꾸던 시절. 대니가 존 레논의 편지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그 순수했던 아티스트 시절의 자신이 아니었을까?


편지를 받은 후 대니는 타인의 욕망으로 점철된 일상에서 탈출한다. 대중의 입맛에 맞춰진 음악과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젊은 동거녀를 뒤로 하고,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아들을 찾으러.


순수한 아티스트와 대중적 스타 사이의 간극을 메운 것은 술과 마약이었다. 자작곡 앨범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다른 ‘선수’들의 곡까지 받게 될 만큼 그의 정체성은 흔들렸다. 어느새 그는 지워지고 그의 껍데기 속에는 타인의 욕망이 채워졌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느껴질 때마다 그는 그 모습을 외면하기 위해 환락을 택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낸 젊은 시절 동안 그는 피붙이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충실해지기 위한 여행의 행선지는 아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평생을 외롭고 힘들게 살아 온 아들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철부지 아버지를 반가워할 리 없다. 이후의 스토리는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자신의 음악도 다시 찾아가는 대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대니의 본모습은 아이 같고, 의리 있고, 사려 깊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고. 우리 모두 본심은 그렇지 않은데, 살아가다 보니 아니 살아남아야 하니 변해 가고 있는 걸까?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모든 것을 망쳐 버리는 대니처럼.


어찌 됐든 대니의 본모습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모습은 어떨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 가며 사는 것이 세상살이의 기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기준이 밖에 있어서 나 자신의 욕망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된다.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리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없다.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면 자기가 언제 행복한지도 모를 테니까. 대니의 욕망을 일깨워 준 존 레논의 편지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대니는 젊은 시절의 인터뷰에서 ‘두렵다’고 했다. 성공 이후에 변해 있을지 모를 자신의 삶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다. 두려워하는 대니 콜린스에게 존 레논은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려워하기보단 스스로의 삶에 충실해지라’고 조언한다. 그 조언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그래서 스스로 질문해 본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충실한가?’ 아니 그보다 더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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