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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물병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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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l 07. 2015

삭발, 그 후

머리를 빡빡 민 적이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어요.


상상도 못 했던 업무량에 파묻혀 시계추처럼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놓여난 어느 일요일 아침.

세면대 거울 속 나의 얼굴도 어제와 똑같다는 걸 발견했지요.

견딜 수 없는 권태에 치를 떨고, 오후에는 미장원의 거울 앞에 앉았습니다.


“짧게 깎아 주세요. 아주 짧게요.”

잘려 나간 머리칼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소나기를 맞는 것처럼 속이 시원합니다.

“이 정도면 되시겠어요?”

머리가 무척 짧아지긴 했지만, 몇 달 전 스타일입니다.

“더 잘라 주세요.”

“더요? ...”

그런 식의 대화가 끝날 무렵, 거울 속에는 민머리의 내가 있었습니다.


신선했어요. 

견고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쾌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쾌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가족들의 반응이 걱정되었죠.

그리고 ‘내일 회사를 어떻게 가지?’ 하는 걱정이 더 큰 파도로 덮쳤습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우선 아버지에게 된통 혼났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동물원 원숭이’가 되고 말았죠.

원정까지 나선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치기를 부린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이튿날도, 사흗날도 사람들의 입방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이사님의 호출까지 받았습니다.

머리를 자른 이유를 묻더군요.

“그냥...”이라는 대답은 제가 생각해도 이 사태를 해명하기에는 궁색했습니다.

“자네는 점심시간에 좀 늦게 올라오게.”

윗분들 심기에 불편을 끼치지 않게 알아서 피해 있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 이제 뭐가 더 남았을까...

그런 생각으로 사태 이후 나흘째를 맞았습니다.


이상하네요. 

오늘은 조용합니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머리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갑작스러운 변화입니다.

나의 민머리는 더 이상 그들의 흥밋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남의 얘기도 사흘 하면 일상이 되는구나.’

‘그 사흘을 못 견뎌서 남의 시선을 그렇게 신경 쓰고 살았나?’


이렇게 하면 ○○가 어떻게 생각할까?

남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적이 많았습니다.

상식대로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자라 사회에 진출했지요.

회사에서는 순정 규격의 부속품처럼 일했습니다.

힘들고 지루했습니다.

욕망의 내부 압력이 높아져 일상의 벽을 뚫고 폭발할 것 같았어요.

그 순간 저의 선택은 ‘삭발’이었습니다.

만약 그렇게라도 안 했더라면 저의 감각은 헐벗고 무뎌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협궤열차처럼 일상의 궤도를 달리다 사라져 갔겠지요.


머리를 밀고 깨달았습니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

내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자.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이니까.





아들러 심리학에 따르면 내 주변의 10명 중 2명은 나를 좋아하고, 1명은 나를 싫어하며, 7명은 그냥 보통의 관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즉 10명 중 2명은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내 편이 되어 주고, 1명은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싫어하며, 7명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죠. 모두에게 좋은 얘기만 듣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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