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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l 08. 2015

메멘토

기억하라, 너의 욕망을

초(楚)나라의 어떤 칼잡이가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루터에서 배에 올라 뱃전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배가 강 중간쯤에 도착했을 때, 배가 출렁거리는 바람에 검객이 차고 있던 칼이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검객은 급히 작은 단도(短刀)를 꺼내어 칼을 떨어뜨린 자리를 뱃전에 표시하면서,
"이 곳이 칼을 떨어뜨린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도착하자 검객은 이제 칼을 찾아야겠다고 하면서, 뱃전에 새겨 둔 표시 아래의 물로 들어가 칼을 찾으려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칼을 찾기는커녕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한자 성어의 고사(古事)입니다. 흔히, '시세의 변천도 모르고 낡은 생각만 고집하며, 이를 고치지 않는 어리석고 미련함'을 비유하는 말이지요. 이 영화의 레너드(가이 피어스 분)를 보면서, 바로 이 한자 성어가 떠올랐습니다. 그가 비록 '단기 기억 손실증'이라는 치명적인 정신 질환을 앓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죠.

전직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는 자신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 손실증 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이름이 '레너드 셸비'라는 사실과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건의 범인은 '존. G' 라는 사실뿐입니다.

레너드의 말처럼 그는 체계적이고도 질서 있게 사실들을 기록합니다. 마치 앞서 얘기한 고사에서의 검객이 뱃전에 표시를 새기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가 진실에 도달하기는 정말 힘들 것 같군요. 왜 일까요? 그렇습니다. 검객이 타고 있던 배가 물살의 흐름에 따라 위치를 옮기게 되는 것처럼 레너드 또한 예전의 자리에서 멀어져 왔기 때문이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 속에 자리하는 모든 존재들의 욕망에 의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욕망의 문맥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파편화된 기록 따위는 세계를 인식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강물의 흐름 속에서의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검객이 칼을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욕망'입니다. 레너드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은, 아주 꼼꼼히 기록된 사실들을 제대로 해석하는 데 바탕이 될 자기 욕망의 문맥을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레너드의 기록들은 그것에 가해지는 주변 인물의 욕망에 따라 여러 가지 사실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욕망까지 더해지고 보면, 참으로 사건의 본질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죠.

결국, 영화는 감독의 욕망으로 마무리됩니다. 레너드가 지녔던 화석화된 기억들은 감독의 욕망에 의해 의외의 것으로 해석되면서 저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단순히 사건의 전말이 던져 주는 충격보다는, 존재의 욕망에 의해 이 세계의 '사실'들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 자체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이 중요한 깨달음을 어딘가에 꼭 '메모'해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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