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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Dec 02. 2015

사우스포(Southpaw)

변해야 이긴다

스포츠는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낸다. 각고의 노력과 극한의 인내를 통해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인생에 대한 용기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도 특히 ‘헝그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권투는 소외된 자들의 인생 역정을 담아내기에 효과적인 종목이다. 도망칠 곳 없는 링 위에서 혼자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복서의 모습은 험난한 세상 속에서 외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록키(1976)’, ‘챔프(1979)’, ‘밀리언달러 베이비(2004)’, ‘신데렐라맨(2005)’ 등의 권투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을 쥐고 눈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안톤후쿠아 감독의 ‘사우스포(Southpaw)’는 앞서 열거한 작품들처럼 권투를 통해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조금은 진부한 맛이 있다. 그나마 제이크 질렌할이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생의 정점에서 몰락한 주인공이 권투를 통해 성장하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을 굴곡 있게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볼거리이다. 또한 땀방울과 핏방울이 내 몸에 튈 듯 감각적으로 담아 낸 경기 장면과 에미넴이 참여한 분노 가득한 OST가 고전적인 드라마에 요즘의 감각을 불어넣고 있다.


주인공 ‘빌리 호프(제이크 질렌할 분)’는 현재 잘 나가는 라이트헤비급 세계챔피언이다. 그의 전적은 무려 43승 무패. 전적만큼이나 물질적으로도 화려한 삶을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두운 구석이 있었으니, 그는 스스로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그의 경기 스타일을 보자. 그는 상대의 주먹을 적극적으로 피하지 않는다. 녹다운 직전까지 두들겨 맞으면서 쌓아 온 분노를 한 순간에 폭발시켜 상대를 때려눕힌다. 보는 사람이야 그런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전극이어서 열광하겠지만 빌리의 아내 ‘모린(레이첼 맥아덤즈 분)’에게는 너무도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빌리에게 더 이상 그렇게 두들겨 맞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고아원에서부터 만나 빌리가 감옥에 갔을 때도 기다려 준 그녀. 빌리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이다. 그런 그녀가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빌리의 돌발 행동에 기인한 사태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의지할 곳이 없어진 불안감에 빌리는 살아갈 의욕을 잃고 현실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몰락한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 ‘레일라(우나 로렌스 분)’마저 함께 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헝그리’ 복서가 된 빌리. 그는 허름한 동네 체육관의 ‘틱(포레스트 휘태커 분)’을 찾아가 맨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 틱은 빌리의 처지를 알게 되고 그의 진심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프로 선수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빌리를 지도한다. 틱은 빌리에게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가르친다. 스스로를 아끼라는 진심어린 당부와 함께. 틱은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빌리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분노를 조절하여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냉철하게 경기를 운용하는 것. 주변의 수많은 일들로부터 자극을 받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틱은 더불어 공격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빌리에게 가르친다. 바로 ‘사우스포’ 스타일이다.


사우스포는 권투에서 왼손잡이 스타일을 이르는 말이다. 오른손잡이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왼손잡이 스타일로 공격을 하면 상대는 익숙하지 않아 방어하기가 어렵다. 즉, 사우스포는 변칙이어서 위력적이다. 평생을 한결같은 태도로 세상과 싸워 온 빌리는 정반대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가진 것 없는 자로서 세상에 질투하고 분노하는 힘으로 승리를 쟁취했던 빌리.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본 적이 없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도 못했다. 그래서 다시 자신을 아끼고 보호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딸을 되찾으려는 빌리. 그는 분노의 힘이 아 사랑의 힘으로 세상과 싸우는 ‘사우스포’, 변칙 복서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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