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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Dec 07. 2015

하트 오브 더 씨

인간 대탐구 보고서

미지의 동물 고래. 바다 깊은 곳까지 다니며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비의 대상이다. 이 고래에서 얻은 기름으로 큰돈을 벌게 되면서 19세기 미국에서는  향유고래잡이가 성행하게 된다. 론 하워드 감독의 ‘하트 오브 더 씨’는 포경선 에식스호 선원들의 고래잡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 욕망의 집착과 생존을 위한 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미지의 동물 고래의 실체를 드러내기보다는 인간 군상을 날카롭게 그려냄으로써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인 것이다.


미국 문학의 고전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벤 위쇼 분)의 급박한 등장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에식스호 사건의 전말을 취재하고 있었다. 간곡한 요청 끝에 94일간 7,200km를 표류했던 21명의 조난 대원들 중 살아남은 8명 중 한 사람인 토마스 니커슨(브렌단 글리슨 분)에게 에식스호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허먼 멜빌과 토마스 니커슨이 나누는 이야기가 외화가 되고, 에식스호 이야기가 내화가 되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런 구성을 통해 에식스호 이야기라는 자극이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수용되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다양한 인간 욕망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내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일등 항해사에 오웬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와 선장 조지 폴라드(벤자민 워커 분)는 서로 갈등하며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기 위해 단기간에 목표량을 채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향유고래가 좀처럼 보이지 않자, 그들은 더 먼 곳에 있는 향유고래 서식지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래 떼를 만나게 되지만, 남미 에콰도르에서 2,800㎞ 떨어진 태평양에서 거대한 고래에 받혀 침몰하고 만다. 겨우 살아남은 조지 폴라드와 선원들은 세 척의 보트에 나눠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항해가 길어졌고, 극도의 굶주림과 갈증으로 한 사람씩 죽어가기 시작했다. 천신만고 끝에 결국 몇 명만이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다.


인물들을 살펴보자. 선장의 능력을 갖췄지만, 출신 성분 탓에 일등 항해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오웬 체이스. 그는 좌절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진다. 그에게 고래는 기름이요, 돈이요, 명예다. 그리고 증조부 잘 만난 덕에 낙하산으로 꽂힌 선장 조지 폴라드. 그는 초보 선장으로서 가문 덕에 선장이 된 것이 아니라 충분한 능력도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의 훌륭한 지휘 덕에 누구보다 많은 고래를 잡기를 바란다. 그에게 고래는 능력이요, 리더십이었다. 그 둘의 욕망이 타협한 지점에서 고래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오로지 그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냥해야 하는 목표물이었다. 그래서 흰 고래의 반격은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 반격으로 인해 자신도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상태가 되어 버린 순간, 오웬 체이스는 각성한다. 저 고래도 그저 살고자 하는 맹목적인 본능대로 행동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고래와 자신을 똑같은 생명체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보자. 순하기만 한 것으로 알려진 고래에게 공격을 받아 포경선이 가라앉은 것은 고래잡이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면 황금알을 낳는 포경 산업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청문회라는 장치를 통해 진실을 왜곡하려 한다. 고래의 위험성을 알려서 타인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돈이 더 중요하니까. 이렇게 진실은 은폐되고 욕망은 지속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실감 나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얻게 된 허먼 멜빌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는 용기’에 방점을 찍었다. 육체적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혹은 사회적 죽음의 협박 앞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는 인물의 행위에 감화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에식스호의 이야기를 자연과 싸우는 의지적 인간의 이야기로 각색하여 ‘모비딕’을 쓴 것이 아닐까? 관점에 따라 비극적 결말도 의지에 의한 숭고미로 장식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작가적 욕망에 의해 실제의 이야기가 변용되는 과정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니커슨 부인(미셸 페어리 분)의 반응에서는 사랑하는 상대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랑의 힘을 보았다. 세상의 냉대와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랑. 그것이 있기에 욕망과 본능으로 망가진 세상이 치유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통해 드러난 인간의 실체에 대하여 실망감이 들 즈음에 보인 니커슨 부인의 반응은 인간 존재에 대한 희망과 긍정을 불씨를 되살려 놓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눈요깃거리를 기대하던 나에게 영화는 욕망이 물결치는 거울 하나를 들이댔다. 나의 욕망과 우리의 현실과 앞으로의 위험을 보는 것 같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감독이 론 하워드였다. 론 하워드의 드라마는 사람들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더불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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