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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an 11. 2016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인 세상

새해 벽두의 일이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 남쪽 모렐로스 주 테믹스코의 여성 시장인 기셀라 모타는 새벽에 자택을 침입한 4명의 무장 괴한들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새로 시장으로 취임한 다음 날 피살된 것이다. 지역을 장악한 마약 조직들이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어긋난 정치인을 제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랏일을 돌보는 행정가들도 안전할 수 없는 무법천지이다. 이처럼 막무가내로 폭력을 자행하는 악의 세력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이런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셀라 모타 시장

FBI 요원 케이트 메이서(에밀리 블런트 분)는 마약 조직의 은거지를 급습한다. 내부의 벽 아래 감추어진 시체 더미에 경악을 금치 못할 때, 뜻밖의 폭발로 일부 대원들이 희생된다. 이런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되는데, 여기서 악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이제껏 보아 왔던 영화들로 짐작해 보면, 이후의 내용은 악의 만행에 분노한 주인공의 복수와 응징으로 채워질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과 선의 승리, 정의의 회복이라는 플롯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화끈한 액션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인물인 맷 그레이버(조슈 브롤린 분)와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분)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은 도전을 받는다. 이야기가 우리의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는 것이다. 사건의 선봉에 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메이서는 그레이버와 알레한드로 주변에서 관찰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레이버를 중심으로 사건 전개의 단서가 조금씩 제시되고,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이야기들을 추리하며 우리는 스릴감을 느끼게 된다.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는 메이서의 심리는 그대로 우리에게 투영되어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총알이 날아들지도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그레이버와 알레한드로에게 이끌려 낯선 세계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낯선 세계의 실상은 카르텔 중간 보스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법대로가 아닌 무자비한 살인. 내가 살기 위해 망설임 없이 당기는 방아쇠. 순식간에 벌어지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덮이는 폭력의 일사 분란함. 우리가 선(善)이라고 여긴 세력이 벌인 일이다. 이 지점에서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낯선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총격씬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그 낯선 세계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생각해 보자. 내부와 외부를 경계 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의 입체를 상상해 보라. 우주는 무한하고 끝이 없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간단한 뫼비우스의 띠에 많은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중략)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중에서


영화 속에서 제시하는 현실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쉽게 알 수 없는 왜곡된 세상이다. 그 안의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의라고 믿는 것이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현실에 대한 엄정한 비판적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메이서는 관찰자로서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그레이버에게 작전의 불법성에 대해 항의한다. 하지만 그런 메이서의 모습이 늑대들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순진한 동물처럼 그려지는 데,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이 있다. 잘못된 것을 알지만,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무게. 그 육중한 불편함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메이서의 패배감이 충격적으로 가슴에 박힌다. 그리고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빠를 잃은 아이가 축구를 하는 배경으로 폭발물이 터지는 엔딩씬은,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세상의 대가를 일반인인 우리도 치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충격과 공포, 그것이 어우러지는 사이에서 이 작품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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