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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an 17. 2016

레버넌트

‘아버지’는 힘이 세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의 일이다. 아내와 나는 가분만을 했다. 아내와 출산의 전 과정을 함께했다. 아이가 점점 아래로 내려오자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다. 숨 쉬기가 힘들다고 했다. 겨우 몸을 한쪽으로 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간호사가 들어와 전자기기들을 살펴보더니 몸을 반대로 돌려 누우라고 했다. 그래야 뱃속의 아이가 눌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아내는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몸을 돌렸다. 아내와 아이는 서로 희생과 고통을 나누고 있었다.


두 생명이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두 손에 모아 기도했다. ‘아가야, 무사히 나오기만 해라. 아빠가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네가 밖으로 나온 후에는 아빠가 모든 걸 책임질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와라.’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고, 나는 그날의 약속을 지키려고 열심히 살고 있다.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는 이 땅에 더욱 단단히 뿌리를 박고 서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된 이후에는 자식들을 돌보는 데 모든 것을 바친다. 아버지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자식들’이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힘이 셀까? 아버지의 사랑은 어느 정도로 깊을까? 모양도 크기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가끔씩 그것들의 존재까지도 잊고 만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는 자식을 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죽은 아들의 복수라는 극한의 상황은 관념적인 아버지의 사랑을 핏빛으로 물들여 우리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서부 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이다. 사냥꾼인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아들 호크를 데리고 동료들과 함께 사냥을 하고 비버의 가죽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디언 부족의 습격을 받고 도망치던 중 회색곰의 공격에 중상을 입는다. 무리로부터 이탈하게 된 글래스는 동료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의 배신 때문에 아들 휴를 잃게 된다. 그리고 산 채로 땅에 묻히고 만다. 눈앞에서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휴는 복수를 위해 부상 입은 몸으로 피츠제럴드를 쫓는다.


이처럼 이 작품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복수극이다. 이 복수극에서 ‘자연’은 크게 두 가지의 기능을 하고 있다. 첫째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심이 얼마나 크고 질긴 것인지를 그려 낸다. 둘째는 그 엄청난 복수심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목숨은 결국 자연의 순리와 신의 섭리를 따르는 것임을 보여 준다.


먼저 첫 번째 자연의 기능을 살펴보자. 회색곰에게 사지를 찢긴 휴 글래스는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그런 글래스에게 가파른 비탈과 무자비한 눈밭, 울창한 나무숲은 극복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카메라가 올려찍기로 보여 주는 자연물들의 위압감은 글래스가 느끼는 생명의 위협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결국 글래스가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피츠제럴드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 자연의 거대함은 아버지의 위대함으로 치환된다. 험난한 자연은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이 얼마나 힘이 센지를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두 번째 자연의 기능을 생각해 보자. 거대한 자연 속 인간들을 하나의 점으로 표현해 내는 부감샷. 부감 풍경 속 인간은 곰처럼, 들소처럼, 늑대처럼 그저 하나의 짐승일 뿐이다. 그리고 바람처럼 강물처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롱테이크 속에서 복수의 몸부림은 미물의 꿈틀거림으로 짧게 느껴진다. 스크린을 꽉 채우고, 영화 속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자연의 압도적인 모습. 그것은 복수심이 나의 삶을 끈질기게 하는 의지가 될 수는 있지만, 남의 목숨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은 인간에게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인간의 목숨은 운명이라는 신의 섭리를 따르고, 그 결과로 자연의 질서는 유지된다. 새끼를 지키려는 곰, 아들의 복수를 하려는 아버지, 딸을 찾기 위한 아버지, 탐욕을 채우려는 배신자가 서로를 죽이려고 하지만, 모두가 죽음을 맞으며 한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광활한 자연 속에는 복수 이외에도 베풂과 보은(報恩), 사랑이라는 섭리도 존재하니까.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신의 뜻이니까.


영화를 보면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위해서라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신(神)이 대자연의 품속에서 우리를 조화롭게 길러내는 힘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처절하고 웅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지는 힘이 세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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