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우 Jan 25. 2016

유스(Youth)

당신은 젊습니까?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주변의 눈치를 많이 봤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주변에서 뭐라고 할 것이 걱정되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조숙하다고 했다. 나는 ‘조숙’이라는 단어에서 ‘애늙은이’의 뉘앙스를 더 크게 느꼈다. 싫었다. 하지만 모험을 해 볼 용기가 없었다. 나는 나이가 적던 시절을 그렇게 권태로운 평균의 감옥 속에서 지냈다. 온갖 주변 상황의 핑계 속에 두려움을 감추고...

     

그리고 지금, 불혹을 넘어선 나는 부서에서 나이가 제일 많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에서야 ‘젊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뭔가 새로운 일을 끊임없이 시도해서 젊다고 한다. 살아 보니 결국 내 마음 가는 대로 무언가 하지 않으면 병나겠더라. 신기하고, 하고 싶고, 해야 한다는 이유로 불타는 열정. 그 열정 덕분에 젊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믿음과 아이들의 응원. 그 힘으로 온갖 두려움을 물리치면서...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야 얻는 깨달음. 이 젊음에 대한 정의가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에 담겨 있다. ‘유스’는 젊음과 늙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풀어 놓고, 그것들을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해석하는 관객들에게 젊음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키고 있다. 미스 유니버스의 황홀한 몸매가 아니라 주름으로 늘어진 노인의 육신 안에서 열정을 발견하고 젊음을 느끼게 한다. 혹은 화려한 청춘의 시기에 있으면서도 냉소와 비관에 빠지게 되면 젊음도 시들어 버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관객들은 젊음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은퇴한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마이클 케인 분)와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우는 영화감독 믹 보일(하비 케이틀 분)은 여러 면에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프레드는 과거에 갇혀 있다. 음악가로서 절정을 달리던 시절, 사랑했던 아내에게 죄를 짓던 시절, 세상으로부터 오만한 예술가로 평가 받던 시절, 그 안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나이를 거듭해서 먹은 육체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영국 여왕의 특별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으려고 한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고급 호텔은 요양원처럼 느껴진다.

     

믹은 인생 영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는 중이다. 그는 최근에 졸작을 만들어 왔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는 오직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대사를 완성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죽기 전에 멋진 유작을 남기는 것이 꿈이다. 그 꿈을 위해서 한참 어린 스탭들과 머리를 맞대고 인생과 영화를 이야기한다. 그는 미래의 작품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시작이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고급 호텔은 휴양소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두 사람의 대비는 믹이 후배들과 망원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시각화된다. 믹은 젊은 스탭에게 망원경으로 먼 산을 보라고 하고 말한다. “저 산을 봐봐. 젊었을 때는 이렇게 모든 게 가까워 보여. 미래니깐. 반대로 이렇게 봐봐. 늙으면 모든 것이 이렇게 멀리 보여. 과거니깐.” 실제로 아주 멀리에 있는 꿈이라도 그것을 가깝게 느끼게 하여 선뜻 걸음을 떼게 하는 것이 젊음이다. 반대로 실제로는 가까운 곳에 있어 붙잡기 쉬운 현실의 문제도 아주 멀게 느끼도록 해서 걸음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 늙음이다. 이 짧은 장면에 함축된 인생의 의미가 영화 전편에 걸친 프레드와 믹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마에스트로, 거장 영화감독, 할리우드 스타 배우, 전설의 축구 스타, 미스 유니버스, 치아 교정 중인 안마사 소녀 등등. 그들이 스위스의 꿈속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이뤄 내는 앙상블은 부상(副賞)으로 얻은 호텔 숙박권만큼이나 호사스러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 황송함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에 울려 퍼지는 조수미의 ‘심플송’을 들으면서 영화에서 얻은 젊음의 교훈이 온몸의 혈관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에 교차하는 두 노인의 컷을 보면서 내 주변의 현실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꿈과 열정보다는 약으로, 성형으로, 화장품으로 안티에이징을 권하는 사회. 젊은이들이 모험보다 안주(安住)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우리 사회는 진정 노령 사회가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레버넌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