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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Feb 06. 2016

검사외전

강동원, ‘꼴통’을 살리다

‘꼴통’은 ‘골통’이라는 말이 변한 것이다. '골통’은 ‘뇌수를 담고 있는 그릇’ 또는 ‘뇌를 덮어 싼 통’이라는 의미이다. ‘뇌 골통’이 ‘머리’를 형성하므로 ‘골통’이 ‘머리’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골통’은 ‘말썽꾸러기나 골치를 썩이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골통’이 ‘머리’를 가리키고 또 그 ‘머리’가 딱딱한 속성을 갖고 있기에, 유연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피우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중에서


한국 영화계는 바야흐로 ‘꼴통’의 전성시대다. 진실 앞에서는 외곬으로 치우쳐 고지식하기만 할 뿐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주인공이 가진 자들의 비리와 싸우는 영화가 유행이다. 관객들은 부조리하고 타락한 세력이 정의의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사이다처럼 통쾌한 맛을 느낀다. 현실이 살기 어려울수록 그 쾌감은 증폭되기에 꼴통의 고군분투는 앞으로도 극장에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꼴통이 너무 진지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이들은 거북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외골수들을 떠올려 보자. 비록 그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게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꼴통의 주변에는 앙상블을 이룰 코믹한 캐릭터가 배치된다. 영화의 굵은 줄기를 꼴통의 전투력으로 이끌어간다면 아기자기한 잔가지들은 조역들이 채워 나가는 식이다. 그 둘의 조화가 영화의 무게와 재미를 결정한다.


황정민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꼴통’ 전문 배우이다. 조폭, 형사, 검사 어느 배역을 맡아도 ‘황정민표’ 우직함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순수함의 바탕 위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고집스러운 모습. 분명 배우 황정민의 매력이고, 무기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류의 캐릭터들을 자주 맡으면서 연기가 비슷비슷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래서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 소식을 들었을 때, 이번에도 황정민이 이전과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사실에 조금은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서는 그 우려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꼴통의 수족이 되어 능글맞은 연기를 펼친 강동원에게 더 시선이 갔기 때문이다.


사기꾼 캐릭터 강동원의 역할은 매우 컸다. 비리 세력의 함정에 빠져 희생양이 된 꼴통 검사. 그가 원맨쇼를 펼치는 복수극이라면 자칫 내용이 무거워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배우 황정민의 연기 비중이 커지면서 이전과 비슷한 모습이 눈에 크게 들어올 것이다. 강동원의 캐스팅은 그 두 가지 위험을 모두 해소했다. 익살스러운 그의 연기는 관객들을 웃게 하고, 관객들의 시선을 단단히 붙잡아 두었다. 전작인 ‘검은 사제들’에서도 꼴통 신부의 파트너인 신참내기로 등장해 훌륭히 수행했던 역할이다. 꼴통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연기가 늘 비슷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던 김윤석과 황정민. 두 배우의 어깨가 강동원을 만나면서 좀 가벼워진 듯하다.


하지만 ‘검사외전’에서 강동원이 연기한 한치원의 비중이 커지면서 아쉬움도 남았다. 변재욱 검사(황정민 분)마저 꼼짝  못 하고 당할 만큼 막강했던 세력들이 한치원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 그러면서 사건의 개연성은 희박해졌고, 서사 구조는 허술해졌다. 또 한치원의 무용담을 다루는 후반부에서 진지함과 웃음의 밸런스가 무너져 버렸다. 현실의 문제를 실감 나게 고발하며 시작한 영화는 코믹 판타지의 결말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단맛만 남은 김 빠진 사이다를 마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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