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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pr 09. 2017

로건(Logan)

아버지 ‘로건’의 자화상

아들이 점점 더 저를 닮아 갑니다. 말수가 많고 울기를 잘합니다. 그 두 가지 이유로 어릴 적의 저는 참 많이도 혼났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들이 저를 닮아가는 게 짜증이 납니다. 꼭 필요할 때에 핵심만 간단히 말해라, 우는 소리 하지 말고 씩씩하게 말해라. 잔소리가 끝이 없습니다. 아들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특별히 그 두 가지에 신경이 쓰입니다. 아버지인 제가 물려준 허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영화 ‘로건’의 로건(휴 잭맨 분)도 로라(다프네 킨 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을 겁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생물학적 딸인 로라. 천형(天刑)과도 같이 로건을 괴롭히는 돌연변이의 능력을 로라가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적들을 마구 쓰러뜨리는 울버린 소녀. 로라를 보면서 로건은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힘들었을 겁니다. 현재의 로건은 다른 사람들을 해친 자신의 과거 때문에 악몽을 꾸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로건은 로라를 차갑고 엄하게만 대합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아버지에게 자식은 ‘우물 속 한 사나이’ 같습니다. 자식을 보면서 아버지는 과거의 자기 자신을 마주합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의 상처와 치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자식을 외면하고 싶습니다. 간극이 점점 커집니다. 아버지와 자식은 서로 마주 보며 따뜻하게 소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이 애처롭습니다. 누군가 보듬어 주고, 이끌어 주길 바라던 과거의 나의 심정을 자식에게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에게 다시 다가섭니다. 자식을 통해 희망까지 포함한 과거의 나를 제대로 추억하게 됩니다.



프로페서 X(패트릭 스튜어트 분)는 로건이 로라를 마주 보게 돕습니다. 로건이 자신의 딸이면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돌연변이인 로라를 지켜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라를 만나기 전, 로건은 리무진 기사를 하면서 힘들게 돈을 모았습니다. 프로페서 X와 말년을 보낼 요트를 사기 위해서 말이죠. 그들만의 미래를 준비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라고 프로페서 X는 지적합니다. 로건은 현실을 절망적으로 보았기에 과거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그대로 닮은 로라에게서도 멀어지려고 한 것이겠죠.


한때는 슈퍼 히어로였지만, 이제는 노쇠해 버린 로건. 심지어는 자살을 계획할 정도로 나약해졌습니다. 그런 그이기에 로라가 찾는 ‘에덴’을 망상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미래의 희망을 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로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파서 혼절한 로건을 대신해 차를 몰고 에덴으로 향합니다. 불굴의 의지, 과거의 로건에게도 분명 그것이 있었을 겁니다. 로라는 로건을 무척 닮았으니까요. 로건은 로라에게서 과거의 긍정적인 모습의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기 싫은 모습만이 아니라 보고 싶은 모습도 마주하게 된 것이지요. 자식을 통해 아버지 로건은 과거 자신의 희망적인 부분까지 제대로 추억하게 된 것입니다.


로건은 더 이상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온몸을 바쳐 현실과 싸웁니다. 이제껏 자신을 옥죄어 온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더 크게는 자신을 이어받은 로라의 미래를 위해서 로건은 싸웁니다. 아버지 로건은 로라라는 자화상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합니다. 그제야 로건에게 로라가 온전히 보입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마지막 순간에 로건이 남긴 한 마디. 그 한 마디에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자식의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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