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물병편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우 Jun 02. 2017

긍정의 스위치를 켜야 할 때

얼마 전 아내가 중앙선 침범으로 딱지를 떼였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어 급한 마음에 불법 유턴을 하다가 단속에 걸렸습니다. 벌점 30점에 벌금 6만 원. 생돈이 나가는 것도 속상한 일이지만, 벌점 30점에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벌점 10점만 더 받으면 운전면허 정지가 된다고 하니까요. 그 후의 어느 날, 지인들과 점심을 먹다가 자연스럽게 그 날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느 한 분이 말씀하더군요. “그럴 때는 제일 비싼 7만 원짜리 딱지를 떼 달라고 하면 벌점은 안 받아요.”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그 방법이 맞는 것인지 여부를 떠나 그때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거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쉬움과 자책의 어조로 지난번 우리의 대응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때 잘 대처했으면 운전면허 정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아내가 덤덤히 답하더군요. “그럼 다음번에 그렇게 하면 되겠네.” 이 짧은 한 마디에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거든요. 이미 지난 일에 매달려 있던 저와 달리 아내는 앞으로의 일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같은 방법을 과거의 일에 적용하니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는데, 앞으로의 일에 적용하니 긍정적인 느낌이 들더군요. 아내가 저에게 매사에 부정적이라고 했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충격을 받는 일. 10년 전 어느 드라마를 보면서도 경험했습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립스틱 하나로 주인공의 화장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맙니다. 나이 어린 증손녀가 증조부에게 “언제 철들래, 왜 자꾸 엄마를 힘들게 하냐.”며 타박할 정도로. 이쯤 되면 아픈 딸아이 키우고 치매 걸린 할아버지 돌보는 일에 지쳐 버린 주인공이 폭발해 버릴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반응은 제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에게 얼굴을 내밀며 자신도 예쁘게 화장해 달라고 합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할아버지는 손녀의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볼에 연지까지 그려 줍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편, 부끄러웠습니다. 어질러진 방이야 치우면 그만인데, 이미 벌어진 일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제가 딱했습니다.

     


지난 일에 미련을 두고 분노하다 보면, 세상사가 부정적으로만 보입니다. 컴퓨터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끄고 다시 켜 보면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지요? 참 쉽고 단순한 방법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 보는 건 어떨까요? 문제 상황을 만나면 잠시 스위치를 내렸다가 올려 보는 겁니다. 지난 일은 잊고 현재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가능성과 희망의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면 좀 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인디언 기우제’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호피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누군가 비를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에만 불평하였다면, 기우제는 계속되지 않았겠죠. 어제의 일은 잊고, 바라는 일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과거는 후회의 대상이 아니라 더 잘 되기 위해 지나온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첫사랑'을 죽도록 때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