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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n 11. 2017

‘수신 확인’은 필요할까

Yahoo 메일에는 ‘수신 확인' 기능이 없더군요. 검색해 보니 이메일의 수신 확인 기능은 일종의 편법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였습니다. 메일을 발송할 때 이미지를 심어 두고, 포함된 이미지의 URL이 호출되면 메일을 확인한 것으로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외국의 메일 서비스에서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보안상의 문제로 수신 확인 기능을 제공하지 않더군요. 그 작은 기능 하나가 없으니 참 답답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특별히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수신 확인 기능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보낸 지 얼마 만에 열어 봤는지, 얼마나 자주 열어 봤는지 등을 확인하면서 제 마음대로 상대방의 반응을 추측했습니다. 메일을 바로 열어 보거나 자주 열어 봤다면 긍정적인 내용의 회신이 올 거라 믿었죠.


반대로 열어 보지 않거나 아주 늦게 확인했다면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했습니다. 상대방의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고서 말이죠. 접속 환경이 좋지 않거나 중간에 하던 일 때문에 메일을 자주 열어 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메일이 도착하자마자 열어 봤지만 모바일 환경이어서 수신 기록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편법으로 상대방의 상태를 파악하고, 제 마음대로 상대방의 반응을 짐작해 버렸네요.

 

부끄럽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수없이 하고 있어서.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을 돌려 말한 적이 많네요. 상대방의 마음을 떠 보기 위해 저만의 문장들을 만들어 대화 속에 감춰 보냈습니다. 마치 메일에 수신 확인을 위한 이미지를 숨겨 놓듯이.


그리고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제 나름대로 해석한 일도 많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서 말입니다. 그 결과로 스스로 놓은 덫에 상처를 입고, 오해의 세상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저였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반응을 기다리며 수없이 수신 확인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스스로를 초조함 속에 가둬 왔습니다.

 

메일을 보내는 것까지가 제 영역이고, 메일을 보는 일과 이후의 반응은 상대방의 몫입니다. 상대방의 몫까지 제가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는 메일을 보내고 상대방의 회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신이 온다면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하고요. 제 기대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제 마음이 날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아니니까요.

   

상대방의 마음을 추측하느라 신경을 쏟고, 추측한 대로 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결과가 기대와 다르면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는 과정. 어쩌면 수신 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과정이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메일을 보낼 때는 따로 문자를 챙깁니다. “메일 확인 부탁드립니다.” 하고 말이죠. 혹은 직접 전화해서 메일의 확인 유무를 체크합니다. 상대방이 읽어 보지 않을 경우, 사업과 관계에 큰 문제가 생기는 사안이라면. 이렇게 보니 수신 확인 기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네요.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조급증 때문에 수신 확인 기능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이 편지에는 수신 확인 기능이 없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은 답답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읽어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돌아올 반응을 기대하지 않으니 여유가 생긴 것이죠. 평상시의 관계에서도 이런 여유를 찾아야겠습니다. 바라는 것 없이 보내는 일에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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