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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물병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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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l 24. 2017

이소라를 듣는 밤

그녀와 헤어졌습니다.

이소라의 공연장을 나오면서.

     

마음을 알 수 없는 친구였어요.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우리 시간을 잠깐 갖자.”라고 할 때마다 저는 이별의 골방 속에 남겨졌죠. 그때마다 이소라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소파에 누운 채로.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처음엔 위로처럼 다가오던 음악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제 마음 그대로였습니다. 입 밖으로 내면 사실이 될까 봐 꾹꾹 눌러뒀던 제 상황이 노래로 그려졌습니다. 이소라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프더군요. 그때부터였습니다. 이소라의 노래에 눈물의 냄새가 배어 버린 건. 티백을 담아 두었던 상자에 차 냄새가 배어 버린 것처럼.

     

우연히 이소라의 공연 티켓이 생겼습니다. 때마침 그녀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고요. 그래서 함께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이소라의 음악으로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한 마디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던 시간들을. 그녀가 그걸 알아줘서 더 이상 이별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노래가 계속될수록 눈물의 냄새가 강해지더군요. 딱지가 앉았던 가슴이 연해지면서 물결이 이는 듯했습니다. 몸에 열이 오르고 턱에 힘이 들어갔어요. 숨을 참아 보기도 했습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러다가 곁에 앉은 그녀를 바라봤죠. 두 손을 모은 채 탄성을 뱉고 있었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던지 조용히 속삭입니다. ‘무대가 참 예쁘지 않니? 이소라는 공주님 같아.’

     

그때 알았습니다. 그녀와 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한 장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레이어에 속해 있는 이미지들처럼. 감정의 작업들은 별도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룹으로 묶일 만한 공통 속성이 없었기에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사랑이란 게 서로 다른 존재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죠. 다른 존재가 만나는 만큼 새로운 경험과 이야기들이 풍성해지는 것이고요. 그렇더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로 묶일 수 있어야 넘나드는 일이 생길 수 있을 겁니다. 넘나듦이 있어야 서로 통하고 믿음도 생기는 것이겠죠. 그녀와 저의 관계에 합성된 이미지처럼 인위적인 경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소라의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 배어 있는 눈물의 냄새를 맡으며.

   

그래서 그녀와 헤어졌습니다.

이소라의 공연장을 나오면서.

     

그리고 배웠습니다. 노력으로도 넘지 못할 마음의 경계가 있음을. 서로의 세계가 다르게 존재한다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연인이니까, 친구니까, 동료니까 내가 노력해서 어떻게든 상대방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강박. 부질없는 것이라 노래합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로 이소라는.

     

이소라를 듣는 밤.

이별하고 사랑했던 기억들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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