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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Dec 19. 2017

너 같은 건 잊었다

모처럼의 휴일입니다. 별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맨살에 닿은 얼음 같은 대사를 만났습니다.      


너 같은 건 잊었다.     


자신을 버리고 모멸감을 준 연인에게 여주인공이 던진 문자 메시지입니다. 저는 ‘너 같은 건’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 말에는 상대방이 이미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 없는 다수에 포함되었다는 선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가 왜 좋아?
너니까. 너여서 좋아.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상대방 자체에 있습니다. 사소한 말투부터 옷차림새, 나를 배려해 주는 마음. 은밀한 비밀부터 속 깊은 고민까지 공유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좋은 것이죠. 세상의 수많은 것들과는 다르게 유일한 의미를 갖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좋을 수밖에요.     


그런 상대가 어느 날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를 앞세워 떠날 때, 관계는 깨지고 맙니다. 내가 부여한 의미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더 이상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별이란 거, 나에게 특별했던 존재를 보편적인 대상으로 바꾸어 인식하는 과정인 듯싶습니다.     


이제 너는 나의 유일한 존재가 아니야.
나를 둘러싼 세상의 여러 정물들 중에 하나일 뿐이지.
너 같은 존재는 내 주위에 많아.
그래서 너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어.
더 이상 나는 너에게 내 마음을 주지 않겠어.    


이별의 아픔이란 게 이런 인식의 전환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 같은 건 잊었다.”는 대사가 그래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아픔을 이겨 낸 자의 선언이었으니까요. “네가 나를 어떻게 배신할 수가 있니?”라며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보다 훨씬 절절했습니다. 사랑도 이별도 자신의 일로 감당하는 사람의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느껴져서.     


이런 근육이 사랑에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개인의 생활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바친 조직이 나를 버렸을 때, 간절히 바라던 목표를 향해 노력해 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감추고 아끼는 것 없이 대한 친구가 내 등에 칼을 꽂았을 때 “너 같은 건 잊었다.”라는 주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단단한 마음의 근육으로 버티고, 아직 내 주위에 남아 있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힘껏 다가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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