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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없는 곳에서 피어나는 것들

by 박재우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깊은 바닷속, 칠흑 같은 어둠과 상상할 수 없는 수압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렴. 지구상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태양의 에너지가 전혀 닿지 않는 곳. 이보다 더 불공평하고 척박한 환경이 또 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곳에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독창적인 생명의 군락이 존재한단다.


과학자들이 그곳에서 발견한 ‘열수구(熱水口)’라는 곳의 이야기는 참 흥미로워. 해저 지각의 틈새에서 뜨거운 물과 대부분의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인 독으로 여겨지는 황화수소 같은 화학 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지. 그런데 그곳의 생명체들은 놀랍게도 그 독을 자신들의 에너지원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더구나.


그들은 햇빛 대신 황화수소를 이용해 ‘화학합성’이라는 자신들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했어. 소화기관도 없이 2미터 넘게 자라는 ‘거대 관벌레’ 같은 생명체들은 몸속의 미생물에게 황화수소를 공급하고 그 대가로 에너지를 얻지. 그들은 왜 우리에게 햇빛이 없냐고 불평하지 않았어. 대신 자신들이 발 딛고 선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모두가 독이라고 말하는 그것으로 자신만의 빛을 만들어내는 법을 터득한 거야.


너의 삶에도 분명 햇빛이 닿지 않는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거야. 너의 노력이나 재능과는 상관없이 너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그런 불공평한 순간들 말이야. 그때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왜 나에게는 공평한 햇빛을 비추어주지 않느냐”고 울분을 터뜨리며 주저앉곤 한단다.


나는 네가 그런 순간을 만났을 때 깊은 바다의 생명체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성공의 공식(햇빛)이 너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때 오히려 너만이 가진 것은 무엇인지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지만 너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능성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현명함을 가졌으면 해. 다른 이들이 단점이라며 무시하거나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여긴 그것이 사실은 너만의 세상을 열어줄 ‘열수구’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세상의 규칙 아래서 환한 무대 위에서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아.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며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너의 빛이 충분히 강해졌을 때 너는 그저 살아남는 것을 넘어 너의 빛으로 주변의 어둠을 밝히고 다른 이들에게 작은 온기를 나눠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깊은 바다 열수구의 생명들이 그러하듯 너 또한 가장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누구보다 아름답고 강인한 꽃을 피울 수 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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