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한정판 운동화 발매 기사를 봤어. 발매일 며칠 전부터 매장 앞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우는 사람들, 순식간에 마비되는 온라인 추첨 사이트, 그리고 몇 시간 만에 몇 배의 웃돈이 붙어 거래되는 리셀 시장까지. 그 신발 한 켤레를 향한 사람들의 광적인 열망, 너희들 말로 ‘하입(Hype)’이라는 것이 만들어내는 낯선 풍경이었지.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과연 그 신발은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일까? 물론 디자인이 뛰어나고 품질이 좋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신발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그것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거품 같더구나. 사람들은 물건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그 줄을 먼저 본단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걸 보니 분명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거야’라고 믿으며 그 줄의 일부가 되는 거지. 그렇게 줄은 또 다른 줄을 부르고 비싼 가격은 더 큰 욕망을 부추길 뿐이야.
나는 요즘 세상의 수많은 생각과 주장들이 퍼져나가는 방식이 바로 이 ‘하입’ 현상과 비슷하다고 느낀단다. 어떤 글의 진실성은 내용의 논리나 근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지에 따라 결정되곤 해. 사람들은 그 주장이 왜 옳은지 따지기보다 그 주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지를 먼저 보는 거지. 나 역시 젊은 시절, 모두가 좋다고 하는 책이나 영화를 보며 정말 그런지 스스로에게 묻기보다 그저 그 흐름에 동참하는 것으로 지적인 만족감을 느꼈던 적이 있어. 그러다 유행이 시들해질 때쯤 ’내가 이걸 왜 좋아했지?’ 하는 의문이 들 때면 마치 귀신에 홀렸던 것 같았지. 이처럼 운동화의 ‘하입’이 우리의 지갑을 노린다면, 생각의 ‘하입’은 우리의 정신을 노린다는 점만 다를 뿐이야.
너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목소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 그 소음 속에서 너는 매일 수많은 ‘하입’과 마주하게 될 거야. ‘올해의 앨범’이라는 평단의 극찬, 차트를 휩쓰는 바이럴 음원,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새로운 신디사이저처럼 말이지. 모두가 옳다고 외치는 주장, 모두가 비난하는 사람, 모두가 열광하는 유행. 그 거대한 흐름 앞에 서면 나 혼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불안하고 어리석게 느껴질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네가 그럴 때일수록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서 그 줄의 정체를 파악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열광하며 달려갈 때 ‘나는 왜 이 줄에 서 있지? 이 줄의 끝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까? 이 줄을 만든 사람은 누구야?’라고 질문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해.
중요한 것은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세상의 모든 ‘하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너의 마음에 장착할 가장 강력한 이퀄라이저(Equalizer)가 되어 세상의 소음은 줄이고 너의 가장 진솔한 목소리를 선명하게 증폭시켜 줄 거야.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보렴. 너는 지금 너 자신의 욕망으로 줄을 서고 있니 아니면 다른 사람의 욕망이 만들어낸 줄에 휩쓸려가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