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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길이 없는 시대의 운전법

by 박재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운전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잖아. 그래서 예전에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경로를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따르려 무던히 애썼지. 경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당황하면서. 그런데 몇 번 길을 잘못 들어보니 알겠더라고. 길을 놓쳐도 내비게이션은 잠시 머뭇거릴 뿐, 이내 새로운 경로를 찾아 목적지까지 결국 안내해 준다는 걸. 이제는 경로를 이탈하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새롭게 주어진 길을 따라가게 됐지.


이런 경험을 하면서 문득 네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모습을 엿본 것 같았어. 정해진 길 하나만 정답인 줄 알았지만, 막상 길을 잃어도 얼마든지 새로운 경로가 열리는 모습 말이야. 특히 내가 너만 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세상은 더 복잡해졌잖니. 그때의 직업이란 마치 종점에서 종점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길고 단조로운 지하철 노선 같았지. 일단 한번 올라타면, 갈아탈 고민 없이 그저 묵묵히 정해진 길을 따라 달리기만 하면 됐어.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지. 하나의 노선만 고집하는 사람보다, 필요에 따라 버스와 지하철, 심지어는 전동 킥보드까지 갈아타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환승 전문가가 더 유능한 시대가 됐잖아. 어쩌면 너의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하나의 선로를 이탈하지 않는 끈기보다, 어디에서 환승하는 게 좋은지 빠르게 파악하고 다양한 교통수단을 조합해 최적의 경로를 만들어내는 유연함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세상은 마치 잘 만들어진 한 장의 지도 같았어.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한 길을 꾸준히 파는 것이 확실히 검증된 성공 경로였지. 하지만 아들아, 이제 그 낡은 종이 지도에 그려진 공식은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어. 평생직장이라 믿었던 업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가 쌓이는 일들이 현실이 되었지. 이처럼 너의 시대는 더 이상 한 장의 지도로 설명되지 않는, 실시간으로 길이 생기고 사라지는 내비게이션 화면 그 자체야. 솔직히 말하면, 그 변화의 속도 앞에서 나 역시 자주 어지럽고 막막하단다.


그러니 이 길이 아니다 싶을 때, 혹은 실수로 다른 길에 들어섰을 때 너무 자책하거나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게 아니라,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용기겠지. 어쩌면 너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운전법이란, 완벽한 환승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길 위에서 헤매는 나 자신을 다독여주는 너그러움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때로는 뚜렷한 목적지가 간절하고 예상치 못한 풍경이 버거울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목적지에 남들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실은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해. 나 역시 여전히 내비게이션 앞에서 헤매는 어설픈 운전자니까. 그러니 우리 각자의 낯선 길 위에서 서로의 여정을 지켜봐 주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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