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뜨끈한 설렁탕이 생각나 식당을 찾았단다. 뽀얀 국물에 밥을 말아 한술 뜨려는데 문득 네가 설렁탕을 먹을 때마다 깍두기 국물부터 찾는 모습이 떠올랐어. 처음에는 맑은 국물 맛을 버린다며 타박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알지. 그 한 숟갈의 국물이 밋밋한 설렁탕을 얼마나 개성 있고 시원한 맛으로 바꾸어 놓는지 말이야. 나도 그날 너를 따라 깍두기 국물을 듬뿍 넣고 송송 썬 파를 더해 먹었지.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작은 차이가 평범하던 설렁탕을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은 풍미가 나는 요리로 바꾸어 놓더구나.
그 설렁탕을 먹으며 인간관계도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 나이가 들수록 곁에 두는 사람이 달라진다는 어른들의 말이 어쩌면 이 깍두기 국물 한 숟갈의 마법과 같은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 한 종류는 만날 때마다 자신의 힘든 일, 세상에 대한 불평, 어두운 전망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야. 그들과의 시간은 마치 간도 맞지 않은 밍밍한 설렁탕을 억지로 먹는 것과 같지. 배는 채울지 몰라도 마음은 텁텁하고 식사가 끝나면 꾸역꾸역 먹은 음식이 명치에 얹힌 듯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어.
우리 모두는 때로 지치고 힘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밍밍한 설렁탕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단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는 힘을 가졌더구나. 그들은 심각한 문제 속에서도 웃을 구멍을 찾아내고 나의 어리석은 실수마저도 유쾌한 농담으로 받아넘겨주지. 그들은 문제 자체를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마치 마법의 깍두기 국물처럼 단조롭고 고된 현실이라는 설렁탕에 맛과 향을 더해준단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별것 아니었던 일상도 꽤 근사한 요리처럼 느껴지게 돼.
나 역시 젊었을 때는 그 차이를 몰랐어. 세상의 온갖 재료들을 그저 닥치는 대로 맛보기에 바빴지.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내 삶을 진짜 풍요롭게 만들었던 것은 화려한 메인 요리가 아니었더구나. 힘든 프로젝트로 모두가 지쳐있을 때 썰렁한 농담 하나로 회의실 분위기를 바꿨던 동료처럼 평범한 식탁 위에서 만났던 그 깍두기 국물 같은 사람들이었어.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허전한 설렁탕에 기꺼이 맛을 더해주는 사람. 그리고 너 자신의 고된 일상이라는 뚝배기 속에도 유머라는 깍두기 국물 한 숟갈을 더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 말이야. 인생이 언제나 화려한 만찬일 수는 없단다. 중요한 것은 평범하고 심심한 재료들 속에서도 너만의 비법을 더해 매일의 식탁을 즐겁게 만드는 능력일 거야. 그 능력이야말로 너를 많은 사람들의 식탁에 기꺼이 초대받는 ‘맛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