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두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길 수는 없어

by 박재우

출근길에 B.B. 킹의 라이브 앨범을 들었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톤은 어찌나 달콤한지, 단 하나의 음만으로도 그의 존재를 알 수 있었지. 현란하게 속주를 이어가는 대신 그는 단 몇 개의 음을 골라 애절하게 구부리고(bending), 나비의 날갯짓처럼 섬세하게 떨었어(vibrato). 음과 음 사이의 텅 빈 공간마저 하나의 연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 여백의 미라니. 꾸밈없이 정직하게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와 짝을 이룬 기타 소리는 그가 평생을 연주해 온 블루스라는 장르가 그의 삶 그 자체임을 웅변하는 듯했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수많은 아티스트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동안, 어떻게 B.B. 킹은 ‘왕’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을까.


그는 팝이 유행할 때도 록이 세상을 휩쓸 때도 그저 자신의 블루스를 연주했지. 세상의 모든 장르를 섞어 히트곡을 만들려는 시도 대신 그는 평생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기타에 ‘루실’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자신만의 장르를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어. 불길 속에 뛰어들어 구한 유일한 것이 바로 그 기타였다는 유명한 일화처럼 말이야. 만약 그가 시대의 유행을 좇아 디스코를 연주하고 신스팝을 노래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잠시 주목받았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킹 오브 블루스’를 영원히 잃어버렸을 거다.


그렇게 자신만의 장르를 완성한 왕의 모습을 생각하니 이제 너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너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더구나. 아마 지금 너의 세상은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겠지. 학과, 합주, 아르바이트…. 스무 살의 인간관계란 마치 데뷔를 앞둔 신인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악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을 거야.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정작 너라는 아티스트의 장르는 고민하지 못한 채 상황에 따라 다른 노래를 연주하며 애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들아, 모든 사람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티스트는 결국 누구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더구나. 그러니 나는 네가 먼저 너 자신에게 질문했으면 좋겠다. 너라는 사람의 ‘장르’는 무엇이니? 너는 어떤 리듬에 마음이 뛰고, 어떤 가사에 너의 이야기를 담고 싶니? 수많은 사람에게 박수받는 것보다 너만의 음악을 찾는 것이 먼저란다. 그렇게 너의 색이 분명해지면 어떤 사람들은 너무 시끄럽다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잔잔하다고 말하며 너를 떠나갈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네 음악이 틀린 게 아니란다. 오히려 진짜 너의 음악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지.


결국 너의 곁에는 너라는 장르를 온전히 사랑하는 진짜 ‘팬’들이 남게 될 거야. 유행가가 아닌, 평생을 함께 듣고 싶은 인생의 노래처럼 말이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너만의 음악을 진솔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되렴. 너의 삶이라는 무대가 그렇게 너를 닮은 음악을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mockup-5219512_1920.jpg


keyword
이전 06화세상의 바다에 착륙할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