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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게 사과하던 밤

by 박재우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이었을 거야. 처음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시작한 농구였지만 어느새 내 세상은 온통 농구공 하나로 채워지고 말았지. 처음 손에 잡았던 가죽공의 감촉, 그 공이 손끝을 떠나 림을 가를 때의 그 짜릿한 소리. 나는 그 감각에 중독된 사람이었고 내 모든 시간과 열정을 기꺼이 골대 아래에 쏟아부었단다.


겨울 코트에 쌓인 눈을 친구들과 함께 치우고 명절에도 텅 빈 운동장을 지키며 공을 던졌지. TV 중계에서 봤던 선수들의 화려한 드리블과 슛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 하며 혼자만의 만족감에 흠뻑 빠지던 그 시간은 어린 나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큰 위로이자 환희였어. 하지만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농구는 결국 내게서 소중한 것을 앗아가고 말았단다.


고등학생 때의 한 경기였어. 가장 높이 솟구쳐 정점에 이른 순간, 누군가에게 밀려 균형을 잃고 그대로 운동장 흙바닥에 떨어졌지.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지독한 통증. 그날 이후 내 허리는 도끼에 찍힌 나무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어. 디스크 판정, 반복되는 통증, 그리고 스무 살 여름, 나는 결국 수술대에 누워야 했단다.


수술 전날 밤이었어. 늦은 밤, 다인실을 채우던 TV 소리가 마침내 꺼지고 사방이 어둠에 잠겼어. 소음이 사라진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히 홀로 남겨졌지.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 미안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어. 내 몸을 향한 미안함이었지. 상대 팀만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시합을 뛰던 무모함, 작은 통증쯤은 무시하며 경기의 재미에만 몰두하던 미련함, 누구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혹사당한 몸이 보내오던 수많은 신호들을 외면했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단다. 결국 나는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미안하다’를 반복하며 처음으로 내 몸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어.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단다. 몸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영혼이 깃든 유일한 집이라는 걸. 우리가 웃고, 땀 흘리고, 때로는 스스로를 방치했던 모든 시간을 정직하게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걸 말이야.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나 한밤중에도 축구를 하러 나서는 네 모습을 보면 그날 밤 병실에서 후회하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마음이 쓰인다.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되면 내 마음대로 농구를 즐길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지금의 나는 슛 몇 번만 던져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TV 중계나 보며 전문가 행세를 하는 것뿐이지. 너희들 말로 하자면 영락없는 ‘방구석 조던’이 되어 버린 셈이야.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젊음만 믿고 몸을 돌보지 않았던 과거가 후회스럽단다.


결국 좋아하는 것을 평생의 즐거움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몸과 꾸준히 대화하는 일이었어. 부디 너는 이 사실을 나보다 일찍 깨달아 너의 뜨거운 열정이 그 친구와의 단단한 우정 위에서 더 오래도록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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