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티스트의 화려한 모습에 열광하지. 하지만 나는 그 빛나는 순간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보냈을 그들의 시간에 더 마음이 간단다.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는 바로 그 고독한 시간을 가리키는 멋진 은어가 있어. ‘우드셰딩(Woodshedding)’. 마치 숲속의 오두막(woodshed)에 홀로 틀어박히듯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자신만의 연주와 사투를 벌이는 시간을 뜻하는 말이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색소폰 연주자 중 한 명인 소니 롤린스의 이야기는 ‘우드셰딩’의 전설로 남아있단다. 그는 1950년대 말,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거인이었지만 돌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사라졌지. 사람들의 시선과 칭찬 속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그 후 2년 동안 그는 매일 밤 뉴욕의 윌리엄스버그 다리 위로 올라가 홀로 색소폰을 불었어.
세상의 모든 소음 위에서 그 누구의 평가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소리를 찾기 위해 보낸 시간이었지. 그리고 마침내 ‘The Bridge’라는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연주는 이전보다 훨씬 더 대담하고 날카로워져 있었어. 기존의 틀을 깨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색과 프레이징으로 그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지.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외로움’과 ‘고독’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한단다. 외로움이 관객 없는 텅 빈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진 수동적인 상태라면 소니 롤린스가 다리 위에서 보낸 시간은 더 위대한 연주를 위해 스스로 무대를 내려온 용기 있는 ‘고독’이었지.
너의 주변에도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을 거야. 그들 사이에서 너만의 소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때도 있겠지. 때로는 다른 사람의 멋진 연주를 따라 하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고. 하지만 위대한 아티스트는 결코 다른 사람의 연주를 완벽하게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란다.
음악사를 돌아봐도 그렇지.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의 삶이 바로 그 증거야. 초창기에 그의 엉뚱한 화성과 독특한 리듬 때문에 비난받고 외면당했던 시간들은 어쩌면 세상이 강요한 기나긴 ‘우드셰딩’과도 같았을 거야. 그는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대중적 유행에 타협하는 대신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더욱 단단하게 다듬어갔지. 결국 그는 흉내 내는 모방자가 아니라 후배들이 따르는 새로운 길을 연 ‘창조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단다. 소니 롤린스가 스스로 무대를 내려와 고독을 ‘선택’했다면 델로니어스 몽크는 세상이 강요한 외로움마저 자신만의 소리를 다듬는 위대한 ‘우드셰드’로 만들어버린 셈이지.
진짜 너만의 음악은 무대 위의 환호나 박수갈채 속에서 태어나지 않아. 오히려 아무도 듣지 않는 너만의 ‘우드셰드’에서 가장 서툴고 불안한 너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움트는 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