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일곱 번째 생일 무렵이었을 거야. 스타워즈를 좋아하던 너를 위해 ‘밀레니엄 팔콘’ 레고를 선물로 준비했지. 깨알 같은 설명서를 보고 네다섯 시간을 씨름한 끝에 조립을 마쳤단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끼워 맞추고 잘못 낀 조각은 다시 빼내며 정말 애를 썼어. 설명서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녹초가 다 되었지만 이내 네가 환하게 웃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지. 잿빛이던 풍경에 환한 색이 입혀지는 기분이랄까. 기대대로 넌 두 팔을 벌려 만세를 부르며 완성된 팔콘 호를 꼭 끌어안았어.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그런데 며칠 후, 완벽했던 팔콘 호는 온데간데없고 바닥엔 수많은 블록 더미만 흩어져 있었지. “어렵게 조립했으니 망가뜨리지 말고 조심해서 놀아.” 나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넌 그 블록들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가고 있었어. 책상 위엔 네가 만든 커다란 로봇이, 거실 한편엔 조그마한 집과 바퀴 달린 자동차가 정렬해 있었지. 삐뚤빼뚤한 모양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재치 있는 모습이 더 정겹게 느껴졌단다. 너는 블록을 손에 들고 미소 지으며 나에게 말했지. “아빠, 나만의 우주선을 만들었어!” 네 작품과 표정을 보는데 마치 네가 너만의 세상에 숨을 불어넣은 것 같았어.
그날 이후, 네가 레고를 가지고 노는 방식은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이 되었단다. 나는 설명서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너에게는 그 순간이 비로소 진짜 시작이었던 거야. 설명서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 결코 유일한 정답은 아니었다. 완벽한 모형을 소유하는 기쁨보다 중요한 것은 서툰 블록들로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생생한 과정 그 자체였지.
그런데 요즘 대학생이 되어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가려 애쓰는 너를 보면, 설명서를 버리고 자유롭게 블록을 쥐던 그때의 네가 그리워지곤 한단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저마다 다른 블록 상자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우리 손에 ‘성공하는 법’이라는 두꺼운 설명서를 쥐어주지.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번듯한 집. 모두가 그 설명서대로 멋진 결과물을 만들려 애쓴다. 모두가 같은 설명서를 들여다봐서일까, 세상은 어느새 완벽한 ‘밀레니엄 팔콘’을 만드는 대회가 되어버린 것 같아. ‘저 친구는 벌써 저만큼 만들었네’, ‘내 건 왜 설명서 그림과 다르지?’ 하고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 초조해지지.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여전히 그 두꺼운 설명서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 애쓰는 것은 아닌가 싶구나. 그래서 요즘 네가 그 설명서에 너무 얽매여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단다.
네 손에 쥔 블록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는 오직 너만이 정할 수 있단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너에게 익숙한 색과 모양을 찾아 너만의 작품을 쌓아 올렸으면 좋겠어. 설령 남들이 보기엔 어설퍼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너의 고민과 노력은 너만이 가질 수 있는 보물이 될 테니까.
설명서대로 만든 팔콘 호에는 감탄은 있었지만 너의 이야기는 없었어. 그건 다른 누군가가 정해놓은 멋진 결과물일 뿐이었지. 하지만 네가 만든 삐뚤빼뚤한 우주선에는, 세상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너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 일곱 살 너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단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너만의 우주선을 조립하렴. 나는 언제나 너의 첫번째 관객이 되어, 그 우주선이 들려줄 너만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