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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다에 착륙할 너에게

by 박재우

아들아, 무심코 TV를 보는데 ‘스페이스X’ 로켓 발사 장면이 나오더구나. 굉음과 함께 불기둥을 토해 내며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압도적이야. 숨죽인 채 지켜보던 중, 로켓이 대기권을 벗어나자 1단 추진체가 분리돼 추락했어. 자신을 밀어 올리던 가장 큰 동력을 스스로 떼어 내야 더 높이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꼭 정해진 숙명처럼 보이더라. 이어지는 장면은 임무를 마친 캡슐이 거친 바다 위로 귀환해 낙하산을 펼치고, 회수선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모습이었지.


그 장면을 멍하니 보고 있다 보니 문득 너와 나의 관계가 꼭 저 로켓의 여정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학 생활을 시작한 네가 이제 막 독립의 첫걸음을 뗀 것처럼 말이야. 지금까지 내가 너를 지상에서 힘껏 밀어 올려주는 1단 추진체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분리된 캡슐인 네가 스스로의 동력으로 더 높은 궤도에 진입할 때가 온 거지. 그리고 나는 이제 너의 비행에 짐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임무를 준비해야 한다는 걸 느꼈단다.


이것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나의 역할이 ‘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너를 밀어 올리는 ‘추진체’에서 너의 귀환을 돕는 ‘회수선’으로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너와 나의 관계도 새로운 좌표를 설정해야겠지. 더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드넓은 수평선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동등한 관계로. 이런 나의 변화가 너에게는 조금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제 너는 그저 ‘아들’이기에 앞서 너만의 세계를 가진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야. 나 또한 완전무결한 아버지가 아닌, 인생의 길을 먼저 걸어온 한 명의 사람이고.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가 너에게 했던 말들이 때로는 ‘기대’라는 이름으로 너의 항로를 미리 정해버리는 좌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여기로 와야 한다’고 못 박아둔, 정해진 도착지처럼 말이야. 하지만 회수선은 캡슐에게 어디로 돌아오라고 명령하지 않아. 설령 예상과 다른 곳에 안착하더라도 ‘원래 여기로 왔어야지’라고 탓하지 않지. 그저 최종적으로 캡슐이 도달한 그 바다를 향해 묵묵히 나아갈 뿐이란다. 그러니 너도 이제 ‘정해진 답’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너만의 항로를 자유롭게 그려나가렴.


얼마 전 네가 “전공을 바꾸고 싶다”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사실 나도 조금 놀랐어. 하지만 그런 고민조차 네가 스스로 궤도를 수정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너만의 길을 찾아가는 너에게 내가 바라는 건 정해진 시간에 의무적으로 보내오는 ‘현재 위치 보고’ 같은 교신이 아니란다. 그보다는 너의 세계에서 길어 올린,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신호야. 네가 발견한 사소한 기쁨에 대한 환호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속상했던 날의 솔직한 푸념이든, 그 모든 것이 너의 진짜 궤적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일 테니.


약속할게. 네가 세상 어느 바다에 안착하든 가장 먼저 너를 찾아내고 곁을 지키는 ‘회수선’이 되겠다고. 전화 한 통이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정해진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부담 대신, 세상 어디에든 너만의 방식으로 도착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서. 어디에 있든 내가 너의 곁을 지킬 것이라는 그 믿음이 너를 더 자유롭게, 더 멀리 날아오르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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