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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이라는 성벽

by 박재우

유독 ‘삼국지’를 좋아하는 너. 그래서 이번엔 ‘삼국지’ 얘기를 좀 해 볼 거야. ‘삼국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제갈량이 텅 빈 성의 문을 활짝 열고 사마의의 대군을 물리친 ‘공성계(空城計)’ 이야기란다. 병사 하나 없는 성 위에서 태연히 거문고를 연주하는 제갈량과 성문 앞에서 그의 속을 읽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사마의의 모습.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 장면의 진짜 승부처는 어디였을까?


나는 그 거문고 소리도 활짝 열린 성문도 아니었다고 생각해. 사마의를 물러나게 한 진짜 힘은 바로 ‘제갈량’이라는 이름 석 자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성벽이었지. ‘제갈량은 절대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그의 평판. 사마의는 제갈량의 계략과 싸운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가진 무게와 싸우다 스스로 물러난 거야. 제갈량을 지켜준 것은 군사나 계책이 아니라 그가 평생의 말과 행동으로 쌓아 올린 자기 자신이었던 셈이지.


나는 이따금 제갈량의 그 보이지 않는 성벽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인 ‘디지털 세계’의 모습을 보곤 한단다. 얼굴도 진짜 이름도 없는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평판이나 신뢰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내뱉은 말은 책임질 필요 없이 흩어진다고 믿는 거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자신’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야. 익명의 공간에서 무책임한 말을 내뱉는 습관은 결국 너의 생각과 언어를 그렇게 물들이고 너라는 사람을 만들어 간단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의 성벽을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것과 같아. 신뢰라는 성벽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이전에 네가 기댈 수 있는 너 자신의 단단한 내면 그 자체여야 하니까.


결국 너의 이름이라는 성벽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란다. 네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너의 성을 쌓는 벽돌 그 자체가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을 향해 무심코 던진 비난의 말은 마치 다른 이의 성을 공격하기 위해 내 성벽에서 벽돌 하나를 빼내 던지는 것과 같단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지는 몰라도 결국 너의 성벽에는 빈틈이 생기고 마는 거지. 반면에 진심이 담긴 격려의 말은 가장 단단하고 잘 다듬어진 벽돌과 같아. 그 벽돌로 너의 성벽을 쌓아 올리면 성은 더욱 견고해질 거야. 그뿐만 아니라 너의 그 따뜻한 말 한마디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성벽을 쌓아 올릴 때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벽돌 하나를 선물하는 것과도 같단다.


언젠가 너의 삶에도 위기의 순간이 찾아와 가진 것 하나 없이 텅 빈 성에서 홀로 적을 맞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너를 지켜줄 가장 강력한 군사는 네가 그동안 쌓아 올린 너의 이름과 신뢰라는 단단한 성벽일 거야.


그러니 익명의 가면이 주는 자유에 취해 너의 가장 소중한 성벽을 스스로 허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남기는 모든 말과 글이 훗날 너를 지켜줄 가장 든든한 성벽의 벽돌 한 장이 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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