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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콘솔이 좋은 음악을
만들진 않아

by 박재우

난 결혼하기 전에는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았어. 어쩌다 여윳돈이 생기면 늘 곁에 두고 사용하면서 그 값어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걸 더 좋아했지. 그동안 눈독만 들이던 노트북이나 비싼 헤드폰 같은 장비들 말이야. 그런데 너희 엄마를 만나고 네가 태어나면서부터 돈을 쓰는 우선순위가 완전히 바뀌었어. 어느 순간부터 물건이 주는 만족감은 금세 희미해지고 대신 가족과 함께 쌓은 시간과 추억이 훨씬 더 값지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그래서 여윳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여행을 떠올리게 되더구나. 물건이 아닌 우리만의 ‘시간’과 ‘경험’을 사는 일이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좋은 투자가 되었어.


요즘 네가 아르바이트로 직접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아마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아.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사고 싶은 최신 장비를 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 돈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손에 쥐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거든. ‘나를 어디에 쓸 거니?’ 하고 말이야. 그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막막해지곤 했어. 마치 빈 트랙을 앞에 두고 내 인생이라는 음악을 어떤 소리들로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프로듀서가 된 기분이었지.


문득 돈이란, 인생이라는 음악을 완성하는 ‘믹싱 콘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자체로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차가운 기계 덩어리지만, 네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완전히 달라지지. 수많은 페이더와 노브도 프로듀서인 네가 만져주지 않으면 침묵할 뿐이야. 돈도 마찬가지로, 네가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단순한 숫자나 종이가 될 수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단다.


그러면 그 믹싱 콘솔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겠지. 때로는 욕심에 페이더를 잘못 만져 소리를 망치기도 하고, 어떤 노브를 돌려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도 할 거야. 우선 가장 중요한 멜로디와 보컬, 즉 너 자신의 경험과 성장을 위해 과감하게 페이더를 올리는 선택을 하는 게 좋겠어. 너의 기억과 배움이 미래를 위한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될 테니까. 때로는 다른 소리에 공간감을 더해 연주를 풍성하게 만드는 ‘리버브’처럼 너의 돈으로 타인의 삶을 도울 수도 있을 거야. 친구와의 소중한 여행 경비나 가족과의 저녁 식사, 혹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한 기부처럼 말이지. 이런 나눔은 너의 삶에 따뜻한 울림과 깊이를 더해줄 거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스터링’ 단계에 주목해 보자. 마스터링은 각 트랙의 소리를 섬세하게 다듬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듣기 좋은 앨범을 만드는 과정이야. 이처럼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저축하고 계획적으로 투자하는 지혜도 필요하지. 네가 목표로 하는 악기 구입을 위해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거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소액으로 장기 펀드를 계획하는 것. 이런 섬세한 준비가 너의 삶이라는 앨범을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바래지 않는 명반으로 만들어 줄 거야.


인생이라는 음악의 목표는 가장 비싸고 화려한 믹싱 콘솔을 소유하는 게 아니란다. 위대한 명반이 언제나 최고급 장비에서만 탄생하는 건 아니니까. 가진 돈이 적다고 위축될 필요도, 많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어. 중요한 건 너에게 주어진 것들로 얼마나 너다운, 그리고 얼마나 멋진 노래를 완성하느냐에 달려있지. 어떤 트랙의 볼륨을 조절하고 어떤 사운드로 너의 이야기를 채워갈지는 오직 프로듀서인 너의 몫이야. 돈의 가치는 얼마나 비싼 장비를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것으로 어떤 의미 있는 울림을 만들어 세상에 남겼는지에 따라 기억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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