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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뇌에게 ‘멍때릴’ 자유를

by 박재우

요즘 사람들은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 신호등을 기다리는 1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30초마저도 스마트폰을 보며 무언가로 채워 넣으려 애쓰지. 잠들기 직전까지 정보를 머릿속에 밀어 넣고 눈뜨자마자 세상의 소식을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어. 마치 삶이라는 악보에 쉴 틈 하나 없이 음표를 빽빽하게 그려 넣어야만 뒤처지지 않는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야.


나 역시 얼마 전까지 그런 조급함 속에서 살았단다. 주말이면 하다못해 캘린더 앱의 다음 주 일정이라도 체크해야 마음이 편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은 어딘가 죄책감이 들었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걸까?’ 하는 불안감이 끊임없이 나를 무언가 하도록 내몰았어.


그런데 최근에 뇌과학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어. 뇌가 아무런 과제에 집중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활성화되는 영역이 있다는 거야. 이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르더구나. 마치 컴퓨터가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일 때, 백그라운드에서 바이러스를 검사하고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는 것처럼 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멈춰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단다. 그동안 머릿속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정보와 경험들을 재정리하고 연결고리가 없던 것들을 새롭게 엮어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 최적화’ 작업과도 같다는 거야.


이 원리를 나도 모르게 직접 경험한 적이 있었어. 한번은 복잡하게 얽혔던 기획안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멍하니 하늘만 봤지.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문제의 실마리가 전혀 다른 곳에서 떠오르더구나.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하려 애쓰는 대신 뇌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줄 때 비로소 가장 중요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단다.


네 경험을 한번 떠올려보렴. 막혔던 멜로디가 악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을 때가 아니라 샤워를 하거나 버스 창밖을 멍하니 볼 때 문득 떠오른 적 없었니? 그게 바로 너의 뇌가 ‘휴식’을 통해 가장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란다.


그러니 우리 이제 텅 빈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며 불안해하지는 말자꾸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의미 없이 공원을 걷는 그 시간이 실은 너의 뇌가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가장 생산적인 시간일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해. 가끔은 의식적으로 우리 뇌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선물하는 일을 잊지 말자. 가장 창의적인 생각은 가장 꽉 찬 스케줄이 아니라, 가장 잘 비워진 시간 속에서 태어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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