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파반느>
인스타그램에 전시된 화려한 외모에 끌려 즉흥적으로 DM을 보내고 맺어지는 인스턴트식 관계.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와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워 보이는 AI 시대. 오늘날의 청춘은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방황한다. 바야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평가되고 속도가 곧 스펙이 되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유한 가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대신 화려한 외피라는 지표만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일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이종필 감독이 박민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영화 <파반느>는 이토록 지독한 시각 중심주의와 속도전의 세상에 던지는 묵직하고도 우아한 반기다. 15초짜리 숏폼이 범람하는 시대에 16세기 궁정 무곡의 느릿한 템포를 차용한 이 영화는, 섣부른 재단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타인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불안한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서정적인 문법으로 증명해 낸다.
사회적 타살을 당한 영혼을 위한 진혼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이자 이 영화의 핵심 모티프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극의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철학적 텍스트로 작동한다. 여기서 '죽은'이라는 수식어는 육체적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규정한 잔인한 미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세상의 무례한 시선에 의해 철저히 지워지고 타자화된, '사회적 타살'을 당한 주인공 '미정(고아성 분)'의 처지를 시리게 은유한다.
이 고귀한 영혼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방식이 바로 '파반느'라는 2박자 계통의 느린 춤곡이다. 원작 소설의 백미이자 영화에서도 주제 의식의 핵심으로 차용된 "너무 빨리 달리다 보면 영혼이 육체를 채 따라오지 못해 잠시 멈춰 서서 뒤처진 영혼을 기다려야 한다"라는 인디언의 비유는 이 작품의 태도를 대변한다. 폭력적인 세상에 잔뜩 움츠러든 미정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고 우아하게 다가가는 '경록(문상민 분)'의 태도는 상처받은 영혼이 낙오되지 않도록 기꺼이 멈춰 서주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화려한 쇼윈도 아래, 소외된 자들의 지하 성소
이러한 주제 의식은 극의 주된 배경이 되는 백화점과 지하 주차장(창고)이라는 공간의 대비를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시각화된다. 지상의 백화점은 모든 사물과 인간이 화려한 조명 아래 전시되고 가치가 매겨지는 거대한 쇼윈도다. 이 눈부신 지상의 공간에서 '기준 미달'로 판정받은 미정은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 주차장으로 침잠한다. 지하 공간은 자본의 성채를 떠받치고 있지만 결코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소외된 노동자들의 유배지다.
하지만 이종필 감독은 지상의 매끄럽고 인공적인 질감을 걷어내고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듯한 거칠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 서늘한 유배지를 따뜻한 '지하 성소'로 탈바꿈시킨다. 낮은 자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듯 바닥에 밀착된 시선이 그들의 삶을 묵묵히 담아낼 때 인물들은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라는 폭력에서 벗어나 서로의 헐벗은 민낯을 온전히 마주한다. 백화점 매장의 날 선 소음과 대비되는 정적 속에서 깜빡거리는 조명의 희미한 빛이 이들의 얼굴을 비출 때 지상의 그 어떤 화려한 전시물보다도 이 불완전한 청춘들의 연대가 더욱 숭고하게 빛난다.
진짜 사랑을 찾기 위한 '가짜'들의 소거법
흥미로운 점은 미정과 경록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며 극 중 끊임없이 '사랑에 대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는 화법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소유나 정복, 허영심, 혹은 동정심과 조건의 교환으로 착각하는 세태를 향해 영화는 끈질기게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반복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사랑마저 스펙과 외모로 거래되는 자본주의적 교환 가치로 전락한 시대에 '가짜 사랑'의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일종의 소거법을 통해 진짜 사랑의 뼈대만을 남기려는 감독의 결연한 의도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고아성의 서늘한 눈빛과 문상민의 사려 깊은 연기는 껍데기에 집착하는 세상을 거부하고 오직 서로의 영혼만을 응시하는 행위에 강력한 설득력을 더한다. 여기에 실없는 유머와 넉살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한(변요한 분)'의 존재가 더해진다. 그의 가벼움은 사실 세상의 위선에 다쳐 철저히 타인과 거리를 두려는 방관자의 태도다. 실없는 웃음 뒤로 상처 입은 진심을 꽁꽁 숨겼던 그조차도 숱한 오해를 뚫고 서로의 밑바닥을 끌어안는 경록과 미정의 곁에서 점차 냉소를 무너뜨린다. 그는 이 무해한 사랑을 지켜주는 수호자가 됨으로써 스스로 썼던 가면을 벗고 진짜 사람의 온기를 배운다.
결국 <파반느>는 한 인간이 숱한 오해의 장벽을 넘어 타인을 온전히 응시할 때 어떻게 서로의 깊은 심연을 비추는 구원의 빛이 될 수 있는지를 묵묵히 그려낸 작품이다. 시각적 자극에 중독된 비정한 세상에서 껍데기를 걷어내고 기꺼이 타인의 영혼과 발을 맞춰 걷는 이들의 조심스러운 춤사위는 그 자체로 오늘날을 방황하는 청춘들이 스크린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풍경이다. 수많은 영상들 중에서 선택받기 위해 자극적이고 트렌디한 방향으로 속도전을 펼치는 OTT 시장에서 <파반느>의 느린 스텝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