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우 Jul 17. 2015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나의 적은 누구인가?

인간 사회에 있어서 갈등과 고통의 중심에는 욕망과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개인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자아 또는 타인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집단화된 욕망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때, 그 억압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이 두 가지 문제 속에서 개인들이 존재하는 양상을 보여 준다. 배경은 1942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우랄 지방에서 막 전장에 투입된 바실리(주드 로 분)는 지옥과 같은 전쟁터에서 소련군의 선전 장교인 다닐로프(조셉 파인즈 분)를 만나게 된다. 바실리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늑대 사냥을 하며 배웠던 출중한 사격술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독일군 장교 다섯을 사살하고, 그 광경을 목격한 다닐로프는 소련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바실리를 영웅으로 만드는 작업을 꾀하게 된다. 바실리의 독일군 장교 사냥이 계속되면서 긴장한 독일군측에서는 바실리의 저격을 위해 귀족 출신의 코니그 소령(애드 해리스 분)을 전장에 투입하고, 바실리와 코니그 두 저격수의 실력 대결이 숨막히게 펼쳐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 중에 바실리와 다닐로프는 타냐(레이첼 와이즈 분)라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서로 갈등하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의 인물들은 집단 간의 욕망, 집단의 욕망과 개인의 욕망, 개인 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소련과 독일이라는 국가의 이데올로기는 수많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데, 그들의 이데올로기 앞에는 비겁한 아군 또한 적이 된다. 집단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존재는 모두가 적이고 제거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가슴은 텅 비어 버릴 수밖에 없다. 기차의 화물칸이 열리면서 정신 없이 전쟁터로 휘몰려 가는 소련군의 불안한 눈빛은 그러한 공허함과 공포를 잘 보여 준 장면이다. 그래서 소련군은 바실리를 영웅으로 조작하게 된다. 병사들의 공허함을 조작된 희망으로 채우려는 것이다. 대중들은 바실리의 전공에 환호했고, 그는 곧 위대한 소련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조작된 것이었기에, 그는 코니그에 대한 죽음의 공포를 드러내지 못하는 억압된 개인으로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와 같은 양상은 사제(司祭)로서의 집단이 폭력적 억압과 여론 조작을 통하여 개인을 제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죽음을 예감한 다닐로프가 다소 유치한 한탄조로 내뱉은 마지막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또 다른 적은 타인을 배제한 채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개인이다. 타냐에 대한 다닐로프의 욕망이 커지면서 다닐로프는 하나의 운명이라던 바실리를 배신하게 된다. 이념에 의해 엮어진 우정도 개인의 욕망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인물 간의 갈등은 다닐로프의 희생으로 인해 해소된다. 여기서 붕괴된 인간 관계의 회복은 개인의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여 서로 화합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또다시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장엄하고 웅장한 화면을 뽑아내는 데는 역시 탁월했지만, 주제를 관통하는 깊이는 느낄 수 없었다. 인물들의 묘사에 있어서도 섬세하지 못했다. 등장인물의 어설픈 대사를 통해 주제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점이나, 어울리지 않게 할리우드 식 해피엔딩으로 마지막을 장식한 점은, 그가 고국인 프랑스에서 인정받기보다 미국에서 잘 팔리는 감독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이 영화는 참 재밌다. 그리고 애드 해리스의 연기는, 말 없는 가운데 느껴지는 인물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펙트 스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