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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ul 01. 2015

박하사탕

순수를 찾아가는 시간여행

영화는 보사노바 리듬의 음악과 함께 시작된다. 작품의 내용으로 볼 때 곡 선택이 다소 역설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작품의 엔딩 장면에서 또다시 흐르는 그 곡을 들으면서 거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미가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 사라지고 철교 밑 야유회장이 등장한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야말로 음주가무를 즐기는 장면 속으로 한 사내가 찾아든다. 그는 아무도 끼워 주지 않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광기어린 행동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철로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와 함께.

이와 같은 Chapter 1의 내용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 모습이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대다수의 현실적인 인간들은 역사에 희생된 개인의 아픔을 끌어안지 못했다. 그래서 주인공 영호는 철로 위로 뛰어든다. 이 때 돌진해 오는 기차는, 영화의 장과 장 사이의 시간적 역행을 매개하는 것으로, 결국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폭력적인 역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영호는 역사에 의해 받은 상처를 타인들과 공유하지 못한 채 혼자 괴로워하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영호의 죽음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삶의 포기라기보다는 역사에 대한 개인의 도전이 아니었을까? 물론 결과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지만, 순응적인 소시민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깨어 있는 인식이 섬뜩하게 형상화된 장면이다.


이후의 작품 내용은 역순행적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한 인물의 파국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 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반적인 순행 구조의 영화가 인물의 궤적을 좇아가기 편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인물에 대한 들여다보기를 시도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적극적인 영화 읽기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설가로서의 감독의 역량이 드러나는데, 서사 구조에서의 플롯이 갖는 의미를 적절히 보여 준 것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견고한 플롯은 감독의 작품 속에 진지한 탐구 의식을 담아 놓는 그릇이 되고 있다.


Chapter 2는 영호가 죽기 3일 전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권총 한 정을 구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한 이를 처단하고 자신 또한 목숨을 끊으려 하고 있다. 이때, 그의 앞에 ‘윤순임’의 남편이 등장한다. ‘윤순임’은 영호의 첫사랑으로, 작품 전체에서는 ‘순수’를 상징한다. 영호의 가슴에 늘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그녀의 죽음은 순수의 소멸을 의미하면서 영호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녀가 영호에게 남긴 사진기는 스무 살 청년 때의 영호가 지녔던 꿈과 열정이었는데, 그는 결국 그것마저 팔아 버리고 만다. 이제 그의 앞엔 현실만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진기 속에 들어 있던 옛날의 필름을 꺼내 보며 눈물을 흘리고 만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영호라는 인물은 순수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방황한다.


Chapter 3에는 현실적으로 타락해 가는 영호와 그의 아내 ‘홍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구점 사장이 되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던 영호는 사무실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홍자는 운전 교습 강사와 바람을 피운다. 영호는 아내의 불륜 현장을 덮친 날에도 여직원과 만남을 갖는데, 바로 그렇게 떳떳하지 못한 순간에 한 사내를 만나게 된다. 그는 영호가 형사였던 시절에 고문을 당했던 운동권 학생으로, 이 작품에서 그 역시 순수와 열정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호는 그 사내에게 말한다. “삶은 아름답죠?”라고.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해 버린 자신과는 달리 순수를 간직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서 영호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 것이다.

 

Chapter 4에는 형사인 영호가 등장한다. 온 나라 안이 학생들의 시위로 들끓던 시절, 영호는 소위 ‘고문 경찰’로 악명을 날리고 있었다. 학생을 잡아 놓고 고문을 가하는 장면에서 현실의 노예가 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만, 첫사랑에 대한 고백은 아직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순수한 마음을 확인시켜 준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비를 그 사람도 보고 있으면 좋겠다’는 영호의 말에서 자신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을 그녀가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이는 곧, 현실적으로 타락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호는 그처럼 사랑하는 여인과 어떻게 헤어지게 된 걸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Chapter 5에 제시되어 있다.


신참내기 형사인 영호는 처음으로 노조원을 취조하게 된다. 고문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영호는 고문 끝에 노조원의 대변을 손에 묻히게 되고, 화장실에서 손을 닦는 그에게 ‘그 냄새 잘 안 빠지지’라고 선배가 말한다. 이 장면은 현실에 의해 오염된 영호의 모습과 그 타락의 악취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영호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순임을 보고 영호는 난감해한다. 그리고 영호의 손을 착하다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영호는 홍자의 엉덩이를 더듬는다. 눈물을 흘리며 순임은 영호에게 사진기 하나를 내놓는다. 그녀를 떠나보내며 영호는 다시 그 사진기를 그녀에게 돌려준다. 영호는 이미 자신이 오염되어 버렸다고 믿었기에 순수한 그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녀가 일깨워 주는 청년 때의 꿈마저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오염과 타락이 시작된 군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괴롭히는 순수함을 떨쳐 버리려고 한다. 그 순수함을 버림으로써 남자와 관계를 맺기 전에도 아무렇지 않게 기도를 드리는 홍자와 같이 현실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려 하는 것이다. 홍자의 기도는 거짓된 순수로서 타락한 인간들이 오염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자기기만이다. 즉, 자신의 타락한 삶을 회개하지 않고 그것을 신의 이름으로 용서받으려는 행위로서, 종교마저 수단으로 이용하는 현실적 욕망의 모습을 보여 준다.


Chapter 6에는 영호의 운명을 바꿔 놓는 폭력적인 역사의 힘이 등장한다. 1980년 5월에 영호는 5·18 민주화 항쟁이라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긴급 출동으로 인해 어렵게 면회 온 순임을 만나지도 못하게 되고, 그녀가 보내 준 ‘박하사탕’마저 군화발에 무참히 밟히고 만다. 즉, 역사와 사회라는 타의에 의해 순수와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박하사탕’은 순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순백의 이미지가 군화발에 밟히는 장면은 영호의 순수가 현실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그렇게 현장에 투입된 영호는 발에 총상을 입어 낙오되고, 한 소녀를 사살하게 된다. 이때 입은 다리의 상처는 Chapter 2Chapter 4에서 통증으로 반복되는데, 이는 현실에 의해 입게 된 내면의 상처가 외연으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영호는 순수를 만나는 순간에 통증으로 반응하는 상처를 얻게 되면서 정신적인 방황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호가 그냥 보내 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다가 사살당하는 소녀는, 결국 영호가 간직한 순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수를 향하여 영호의 총은 발사되었고, 이후의 그의 생활은 현실적 욕망으로 오염되기 시작했다. 소녀의 피가 영호의 몸을 적시듯…….

Chapter 7. 장면은 이야기의 처음에 등장했던 야유회장으로 바뀌고, 소풍을 즐기는 젊은 날의 영호와 순임이 등장한다. 소풍의 장소인 철교 밑 강가는 영호와 순임의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순수의 공간으로, 그곳의 젊은이들은 기타를 치며 “나 어떡해”를 부른다. 트로트 음악에 맞춰 요란하게 춤을 춰 대는 20년 후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순수한 모습이다. 그 20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이 “나 어떡해”를 불렀을 것인가. 이야 말로 영호의 20년간을 가장 잘 나타내 줄 수 있는 노래가 아닐까? 그 노래를 뒤로 한 채 강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영호의 시선이 화면을 채우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에서 흐르던 보사노바 곡은 다시 흐른다. 이 순간에서야 그 곡의 의미는 확실하게 다가왔다. 하늘을 바라보는 영호의 시선처럼, 순임의 늘 수줍어하는 눈빛처럼, 입안이 화해지는 박하사탕처럼 순수하고 청명한 그 느낌. 보사노바의 리듬은 그 느낌을 살려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처음과 마지막에 반복되는 음악과 함께 순수를 찾아가는 시간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다.


극장 안에 불이 들어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영호의 이야기는 나의 가슴 속에서 새롭게 시작됐다. 살아가면서 순수를 잃지 않는 사람들, 순수를 잃어버린 채 현실만을 좇는 사람들, 그리고 현실과 순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연 나는 그 중의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정신없이 살아가던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 하나를 던지게 한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운, 정말 좋은 영화를 봤다. 그래서인지 박하사탕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까지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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