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우 Jul 01. 2015

인 디 에어(Up In The Air)

어느 노마드 인생의 달콤 쌉싸래한 성찰기

1시간 40여 분의 출근길. 전철 안의 이웃을 베개 삼아 선 채로 졸면서 일상의 피로를 느낀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나? 숨 막힌다. 모든 걸 때려치우고 나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아 보고 싶다.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른 채 갑갑하게 사는 게 원통하고 한심스럽다.

지난주에 만났던 선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임질 것 없이 자유롭게 사는 화려한 싱글. 겨울에는 해외에 나갔다 왔다지. 이번에 새로 산 기타가 내 월급보다 비싸단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에게 손사래를 치며, 외롭다고 말하는 선배. 그래서 밤마다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거예요?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내가 졌다.

정착이냐, 유랑이냐. 누구나 가끔씩 빠져 보는 고민이다. 정착한 이들은 노마드적 자유를 동경하고, 유랑하는 이들은 관계 속에서의 안정을 희망한다.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Up In The Air)>는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한 편의 세련된 코미디로 그려 내고 있다. 1년 322일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미국 최고의 베테랑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의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 삶의 형태에 대한 유쾌한 비교 분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배낭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성공한 인생, 라이언 빙햄은 오늘도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한다. 배낭 하나를 보여 주면서…….

자신의 삶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두십니까?

삶을 배낭에 메고 다니는 짐이라고 잠시만 생각해 보세요.

적어도 멜빵의 무게가 느껴지겠죠. 느껴지시나요?

이제 인생의 잡동사니 전부를 그 배낭에 넣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걸어 봅시다.

꽤 힘들죠?

이게 우리가 매일같이 하고 있는 일인 겁니다.

우린 스스로를 걷지 못할 때까지 억누르고 있습니다.

착각을 버리세요.

인생은 여행입니다.

자, 이제 그 배낭을 불태워 보지요.

그 전에 이 배낭에서 꺼내고 싶은 게 뭡니까?

사진?

사진은 치매 환자에게나 필요하지요.

은행 추출액 복용하고 사진은 태워 버리세요.

그냥 다 태워 버립시다.

내일 아침, 싹 다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정말 상쾌하지 않습니까?

전 매일 아침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무소유’의 정신인가? 여행 가방을 싸서 공항을 드나드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는 정말 필요한 것만 갖고 산다. 인생을, 꿈을 향해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지금 당장 꼭 필요한 것 이외의 것들은 거치적거리고 성가실 뿐이다. 이동은 여객기와 렌터카로, 숙박은 호텔에서.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이동에는 부담이 된다. 낭비가 없는 합리적인 인생이다.


이제 조금 어려움은 있겠지만 저를 따라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새 배낭이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그 배낭을 사람들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그냥 아는 사람들, 친구의 친구부터 시작해서 담으세요.

사촌, 숙모, 삼촌, 남동생, 누나, 부모님 마지막엔 남편과 아내, 자기 애인을 담으세요.

이제 그 가방의 무게를 느끼세요.

착각을 버리세요. 당신의 관계는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요소입니다.

어째서 그 배낭을 내려놓지 않습니까?

어떤 동물들은 일생동안 공생을 위해 다른 동물을 지니고 다니죠.

우린 그런 동물이 아닙니다.

이동이 느릴수록 우린 더 일찍 죽습니다.


이 대목은 좀 씁쓸하다. 물건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간관계까지 부담스러우므로 버리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는 결혼과 아이, 가족을 부정한다. 그런 관계 속에 얽매이는 순간, 자신은 인생의 여정을 한 걸음도 더 옮길 수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다. 죽을 때는 누구나 혼자라는 현실을 보며 자란 그는, 외롭더라도 혼자서 걸으려 한다. 외롭다고 생각되면 여행 중에 마음 맞는 사람과 간단하게 즐기면 되는 일이다. 서로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아주 쿨~하게.


꿈을 포기하는 대가로 귀하에게 얼마를 지급했나요?

라이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 업무는 해고자들이 견딜 수 있게, 상처받은 그들을 공포의 강 너머 어렴풋한 희망이 보이는 곳까지 보트로 수송하는 거야. 그런 다음 보트를 세우고 그들을 물속에 밀어 넣어 수영하게 하는 거야.”

라이언에게 해고를 통보받은 사람들. 그들은 평생을 바쳐 단단하게 박은 뿌리를 라이언의 통보로 인해 송두리째 뽑히고 마는 것이다. 정착한 지 오래라, 그들은 그것이 인생의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뿌리를 뽑히면 생명체는 죽는 법이니까. 이제 척박한 현실 속에서 서서히 죽어 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라이언은 다르다. 그는 어차피 인생은 꿈을 향해 가는 여행이기 때문에 이제 잠시 머물던 곳에서 털고 일어나 새로운 희망의 땅으로 떠나면 된다고 말한다. 꿈을 포기하는 대가로 현실에 안주해 버린 이들에게 다시 꿈을 찾아 떠나라고 권하는 일, 이것이 라이언이 하는 일인 것이다.


1,000만 마일 적립. 마일리지 적립 자체가 최종 목표야.

이처럼 라이언은 일체의 관계를 부정하고 외롭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여행한다. 그의 인생 목표는 다름 아닌 꿈의 1,000만 마일 적립. 그는 세계에서 7번째로 그 위업을 달성하려고 한다. 그 꿈을 위해 그는 여행 중에 마일리지가 적립되지 않는 곳에는 한 푼도 쓰지 않는다. 과연, 그에게 마일리지는 어떤 의미이기에 이토록 집착한단 말인가?

마일리지는 그에게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 관심과 사랑을 돌려준다. 그리고 관계 속에서나 얻을 수 있는 존재감까지 선사한다. 그가 카드를 긁기만 하면, 상대방은 친절하게 그를 알아보고 상냥하게 인사한다. 호텔 프런트에 아무리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그는 우선 통과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가족을 대하듯 마일리지는 최상의 서비스를 그에게 제공한다. 게다가 세계에서 7번째로 1,000만 마일을 적립하게 되면, 그의 존재감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소비를 했을 뿐인데, 마일리지는 외로운 그에게 따뜻한 정을 돌려준다. 아무런 부담 없이.


라이언, 관계 속에 빠지다.

여행 중의 라이언은 호텔 라운지에서 알렉스(베라 파미가 분)라는 여인을 만난다. 이야기가 통하고 생각이 비슷하기에 하룻밤 인연을 맺게 된다. 그저 외로울 때, 그리고 여행 스케줄이 맞을 때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나탈리(안나 켄드릭 분)이다. 1,000만 마일리지 달성을 앞둔 어느 날, 온라인 해고시스템을 개발한 신입사원 나탈리가 등장한다. 만일 이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해고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여행할 필요가 없게 된다. 라이언의 유랑 인생에 최대의 위협이 찾아온 것이다. 결국, 라이언은 당돌한 신입사원에게 해고 업무의 진실을 보여 주고, 온라인 시스템이 해고 업무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생애 처음 동반 출장을 떠나게 된다.

아직 장밋빛 인생을 꿈꾸는 나탈리는 책임감 없이 알렉스를 만나는 라이언을 질책한다. 결혼할 마음도 없이 즐기는 것만을 원하고, 상대방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라이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나탈리는 라이언의 인생에 자극을 준다. 아마도 그가 맞닥뜨린 나탈리라는 인물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의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나탈리와 말다툼을 하긴 했지만, 라이언의 마음도 실은 허공 밑 지상을 향해 움직이는 중이다. 알렉스가 점점 더 좋아지고, 온라인 해고시스템이 개발된다면 어차피 이전의 삶의 방식도 버려야 하니까. 급기야 여동생의 결혼식 여행에 함께 가자고, 알렉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라이언. 외롭고 건조한 그의 여정에 달콤한 향기가 젖어 온다.


누구에게나 부기장은 필요하다.

결혼을 앞둔 동생 내외. 주변 사람들에게 곳곳의 명소에서 자신들의 사진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어 줄 것을 부탁한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않은 덕에 신혼여행은 가지 못하는 대신에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정착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가 그렇듯이 말이다. 각박한 현실에서 일탈을 꿈꿔 보지만, 늘 시도는 못 하고 상상만 해 보는 그런 여행. 동생 내외의 기념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귀엽고 안쓰럽다.

이처럼 찰떡궁합을 과시하는 예비부부에게 갑작스런 위기가 찾아온다. 신랑 될 사람이 결혼식 당일에 결혼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 것이다. 그는 말한다. 무슨 목표를 위해 결혼이라는 짐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라이언이 대답한다. 목표는 없다고. 다만 외로우니까, 혼자보다는 둘이 좋으니까 결혼하는 거라고. 누구에게나 부기장은 필요하다고.

결국, 그 이야기는 라이언 스스로에게 한 말일 것이다. 알렉스를 만나고, 나탈리에게 자극을 받으면서 그는 진짜 관계 속에서 외로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배낭에 사람을 채우려고 한다. 자유로운 노마드, 라이언 빙햄이 변했다. 이제 지상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란 게,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손에 잡힐 듯이 목표가 들어온 순간, 그것은 어느 새 저만치 달아나 있다. 결국, 정착에 실패하고 다시 떠도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라이언. 하지만 그렇더라도 라이언이 변한 것은 확실하다. 배낭을 비우라고 설파하던 라이언은, 관계 속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살아가는 정착하는 삶의 방식을 인정한다.

“오늘밤 많은 이들이 꼬리치는 강아지와 소리치는 자녀가 맞아 주는 집에 갈 것이다. 배우자가 그들의 일과에 대해 묻고 그들은 잠들 것이다. 낮에 숨어 있던 별들이 나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빛날 것이다. 그 별들을 가르고 좀 더 밝은 빛을 내며 난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하사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