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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ug 18. 2015

베테랑

익숙하고 통쾌한 맛의 돌풍

먹어 본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건, 배고플 때 먹은 ‘라면’이다. 스프 외에 그 흔한 계란 하나 넣지 않았는데도 숨도 안 쉬고 다 먹을 만큼 기가 막힌 맛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 진리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을 보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자본을 앞세운 재벌의 갑질.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 보고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한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고 염증을 느끼는 관객들은 ‘정의 결핍 상태’이다. 결핍 상태의 관객들은 현실의 맥락으로 영화의 부실한 스토리를 이리저리 꿰맞춘다. 그러면서 실제보다 더 증폭된 맛의 감동을 느끼고 호응한다. ‘정신 승리’의 조미료가 뿌려져서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듯도 하다.


감독의 전작인 ‘부당거래(박훈정 각본)’도 검사와, 경찰이 비리와 스폰서로 얼룩진 사회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부당거래’는 잘 짜인 스토리와 플롯의 힘으로 관객들이 작품 자체에 몰입하게 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을 관찰하고 부조리한 현실 세계의 모습을 조망한다. ‘베테랑’의 경우, 관객은 영화 속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자본의 횡포에 나락으로 내팽개쳐지는 트럭 운전사에게서 회사에서 부속품처럼 취급받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 재벌이라는 거대한 성을 무너뜨리는 형사에게서 내가 승리자가 된 듯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서민들의 일반적인 정서가 담겼고, 단순한 구성이지만 후반에 폭발하는 맛! 우리가 좋아하는 유행가의 맛과 닮았다.


가끔 노래방에서 자신 있게 노래를 골랐다가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노래의 앞 부분을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두 다 앞 부분을 타령처럼 읊조리다가 후렴구에서 대동 단결한다. 후렴구를 시원하게 부르고 나면 초반의 머쓱함은 없어지고 모두들 유쾌해진다. 후렴구가 터져줘야 제 맛인 유행가의 공식. ‘베테랑’에서도 느껴졌다. 그래서 장윤주의 오버 연기도 묻힐 수 있었다. 유아인의 악역은 뒷부분의 폭발력을 배가 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류의 영화가 또 있었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다.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가 비열한 권력과 대결하는 영화. 코믹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단조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다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온갖 분노로 똘똘 뭉친 성룡이 정의의 주먹을 날리며 끝내 승리하던 영화. 그렇다. ‘폴리스 스토리’부터 이어지던 한방의 맛이 ‘베테랑’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다. ‘베테랑’의 흥행은 이처럼 익숙하고 통쾌한 맛에 대중들이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맛으로  이야기하자니, ‘베테랑’을 보면서 느낀 맛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씁쓸한 맛’이다. 재벌의 만행을 심판하는 영화를 재벌이 배급하고, 그 영화를 또 다른 재벌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보는 맛. 부디 비린내에 예민한 나만 느낀 맛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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