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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강약 조절이 참 탁월하다.

엄지 척! 막내의 동그란 눈에 으쓱해지다.

언제인지 흐릿하지만, 살짝 한쪽으로 기울어진 윗니를 보여준다며 막내가 그 조그만 입을 크게 벌리며 내 앞에 섰다.

손가락을 조심히 넣어서 살살 건드려 보니 제법 흔들림이 크다. 조금 힘을 주어 밀었더니,


아야야. 아프다며 그 입을 닫아버린다.


막내에게 손으로 조금씩 흔들어주라는 말을 해주고 지켜본 지 며칠이 지난 듯하다. 아니 일주일인가?


막내의 치아들은 너무 특이해서 유치가 흔들리기도 전에 뒤에서 영구치들이 아 나온 탓에, 치과에 달려가 유치를 뽑아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제법 흔들리는 이를 느끼며 치아가 빠질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건, 막내의 첫 경험인 것이다.


요즘 밥을 먹을 때마다, 흔들리는 이 때문에 아프다며, 불편을 호소한 탓에 조만간 때가 오겠구나 싶었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한국에 계신 엄마랑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은 찰나,

막내가 휴지를 손에 들고 굳은 표정으로 내 앞에 선다.


손에 든 하얀 휴지에 묻은 피를 보고 흔들리는 유치를 살펴봤더니 잇몸에 붙어있는 부분이 살짝 들려 피가 나는 게 보인다.


나의 도구인 치실을 꺼내 들었다. 쭉~~ 길게 뽑아 고리를 만들고 빠지지 않게 치아 깊숙이 치실을 동여맸다.

여러 번 겹겹이 동여맨 치실을 손으로 꼭 부여잡고 아이를 쳐다보며 비장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이게 젤 중요할 때이다. 엄마가 겁을 먹고 어설프게 힘을 주면 제대로 한 번에 뽑히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더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아주 단번에 확 힘을 주어 뽑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 찰나의 순간을 너무 티가 나게 하면 보통 아이들이 같이 겁을 먹는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묶은 치실을 손에 쥐고는 아이의 관심을 살짝 분산시켜야 하는 거다.


두어 번 눈을 깜박 거리며 아이와 장난을 치다가 재빠르게 왼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밀면서 오른손으로 치아를 잡아챘다.

순간 아이가 "아파"를 외쳤고, 내 손에는 치실에 묶인 유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치실 묶어서 집에서 유치 뺀 첫경험한 우리 막내

첫 경험, 찰나의 아픔을 느끼고 울까 말까 고민을 하던 녀석이 대롱대롱 매달린 치아를 보더니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와우"라는 감탄사를 내뱉더니, 찰나의 고통은 이미 저기로 날아가 버린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빠진 곳의 지혈을 위해 휴지를 물고 치실에 매달린 치아를 보느라 온통 정신이 팔린 아이를 향해

"어때? 엄마 잘해?" 물었더니,


엄지를 척 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동그란 반짝이는 눈으로 날 보며 멋지다고 치켜들어준 손을 보고 있자니,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어 어깨가 으쓱 있다.


그럼, 내가 애가 넷인데.. 완전 베테랑 경험자인데

이런 생각에 혼자 또 쓸데없이 으쓱해진다.


큰 딸의 첫 유치를 빼주던 그날은 손이 덜덜 떨렸었다. 아무리 흔들리는 치아라 하더라도 직접 뺀다는 생각에 어찌나 겁이 나던지... 근데 그게 둘째, 셋째 계속 반복하다 보니, 아이들은 살짝 겁을 먹어도 나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겁먹던 말던 과감하게 이마를 밀어내며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재빨리 잡아 빼는 이런 과감함이라니..

막내의 유치를 처음으로 뽑아주며 수없이 반복했던 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 넷을 키우니 유치 빼는 전문가의 포스가 흐르는 나를 본다. 멋지다. 애 넷 엄마! ㅎㅎ

울 막둥이 한동안 윗니 때문에 발음이 셀듯 싶다.

통에 담긴 유치는 베개 밑으로 들어간다. 이제 오늘 밤 빠진 유치를 사갈 Tooth fairy가 방문할 거다.

Tooth Fairy는 돈을 놔두고 빠진 유치를 가져간다.

유치가 빠진 아이들을 위한 캐나다 문화이다.

금액은 부모님의 결정인 걸로 마무리하며~ Tooth fairy의 비밀을 알고 있는 큰 딸의 도움을 받아, 꼭꼭 숨겨진 통을 겨우 찾아내 유치를 1불에 사 왔다.


아이들이 많으니 유치를 사느라 쓰는 돈도 만만치가 않다는 소소한 안타까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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