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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너의 의도는 무엇이냐?

3살.. 아니 1살 때 시작된 행동은 여든까지 가려나?

환기를 시킨다며 신랑이 베란다의 문을 열었다.

"야!! 누구야? 저 나무는 누가 갖다 놨어?"


신랑의 우렁찬 고함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방에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만 9살 큰 아들이 뛰어나왔다.

"저요!!!"

"가서 치워!!"

"지금요??"


우당탕 문이 열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파닥파닥 슬리퍼를 신고 뛰어가는 아들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열린 베란다 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대체 이런건 언제 갖다 놨을까? 보고 정말 어이없는 헛웃음만 나온다.

어디 바다 위에서 떠다닐 법한 사이즈의 나무가 덩그러니 베란다를 가로지르며 떡하니 놓여있다.


아들의 나무 사랑은 유별나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만 1살 공원을 데리고 갔더니 나무 막대를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휘둘러댔었다.

저 막대기로 사방을 내리치고 다니는 덕에 아찔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만 1살 때 첫 막대기를 들고 온 아들은 만 9살인 지금도 길을 가다 멋들어진 나무 막대만 보면 이리저리 살펴보곤 주어 온다.


처음엔 조그만 막대기를 가방에 고이 넣어 오더니 점점 스케일이 커져 저렇게 큰 나무를 들고 왔나 보다 싶어 웃음이 났다.


요즈음에는 학교를 걸어 다니니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가 다 제 컬렉션이라도 된 듯 들고 온다. 외출을 하며 문을 열면 문 옆으로 제각각 다른 나뭇가지들이 쌓여있다.

집으로 갖고 오질 못하게 하니 다 밖에 모셔두는 거다.


가드닝 하는 사람들이 다녀간 후, 집 앞에 수국 나무가 가치 치기를 당해 헐벗은 채 있었는데, 며칠 전 문을 여니 파란 잎들이 돋아 있다. 그것도 참 풍성하게 말이다.


아들이 집에 오는 길에 주어다가 수국 나무 옆에 잘도 끼어놓은 걸 보고 혼자 또 한참을 웃었다.

겨울이라 헐벗은 수국 옆에 파란 잎이 무성해서 한참을 보니 아들 작품이다.

참 엉뚱한 아이의 행동이 재미있다.

만약 내가 1살인 아이의 막대기를 빼앗고 못하게만 했다면 이런 모습이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1살 아이가 막대기를 들고 무법자처럼 휘두를 때 주위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진땀을 뻘뻘 빼며 이 아들 뒤만 졸졸 쫓아다녔다.

그 덕에 더 이상 막대기로 사람을 내리치진 않지만, 나무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하다.


이 나무 막대기에 대한 관심이 우리 아이의 시간과 삶에 어떠한 모습으로 투영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금은 주어 오기만 하는 이 나무 막대기들을 이 아이는 과연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저 수집만 할지 아니면 그 관심이 기초가 되어 다른 모습을 이루어 갈지?

지금의 이 나뭇가지들이 우리 아들의 역사의 한 단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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