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맞는 것보다 따로 맞는 것이 나을 거라는 주위 분들의 권고가 있었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 다르긴 하지만, 백신 접종 후, 팔의 묵직함과 오한 그리고 몸살기가 동반된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함께 주사를 맞고 함께 나란히 누워서 백신 후유증을 앓을 수 없는 현실과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지난주 일요일 오후 4시, 신랑이 1차 접종으로 화이저를 맞고 왔다. 혹시 모르니 운전을 대신해 달라는 신랑의 부탁으로 함께 접종 장소에 갔었다.
주말인데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신랑은 들어간 지 30분도 되지 않아서 접종을 끝내고 나왔다. 말이 30분이지, 20분 만에 나온 기분이다.
지난주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이번 주도 비슷하겠거니 기대를 갖고 신랑과 집을 나섰다.
"지난주에 보니 별거 아니네. 그냥 혼자 가도 되겠어."라는 신랑의 말에 등짝 스매시를 한대 날려주며, 지난주 나의 봉사에 보답하라는 의미로 운전대를 쥐어 주었다.
신나게 수다를 떨며 접종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난 주와는 다르게 하... 줄이 엄청나다.
접종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줄이 한 블록을 따라 늘어서서는, 반 바퀴를 이루었다.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기 위해 좌회전을 하자마자, 신랑이 차에서 내리라며 길가에 차를 세워주었다.
그렇게 중간에 내려 줄을 따라 역방향으로 거슬러 간다. 이 줄의 끝은 어디일까???
화살표 방향으로 꺽어서 블럭 반을 지나 다시 우회전을 하고 그 길을 따라 거슬러 가야 나오는 접종 장소 입구가 멀기만 하다.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제부터 올 누군가보다도 더 빨리 줄을 서기 위한 마음에 내 발을 재빨리 돌려본다.
그렇게 마지막 자리에 서자마자 내 뒤로 또 커플이 서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남을 보고 신랑한테 카톡을 보낸다.
"줄이 엄청 나.. 혼자 서 있기 심심하네"
분명 읽었다는 표시가 사라졌는데 답장이 없다.
시간이 좀 지나니 저 앞에서 신랑이 우산을 하나 들고선 나타난다.
"같이 와서 생고생이야. 내가 왜 줄을 같이 서 줘야 하는데?" 투덜투덜하면서도 우중충한 하늘 탓인지 우산까지 챙겨 온 츤데레 남편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긴 줄이 줄어드는 거리를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45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접종 장소 입구에 다 달랐다.
함께 해준 신랑은 이제부터 차에서 기다린다며 자리를 떠나고 내 앞에 남은 몇 사람의 뒤통수를 쳐다보며 입구와의 거리를 좁혀간다.
오늘 백신을 어떤 백신인지에 대한 설명이 입구 앞에 써 있었다.
입구에 가까이 가니 오늘 18세 이상은 모더나 백신을 놔주고, 12~17세는 화이자 백신을 놔준다고 쓰여 있다.
지난주 신랑은 화이자를 맞았는데, 일주일 차이로 나는 모더나를 맞게 되었다.
입구 앞 안내원이 다가와 코로나 증상이 있냐는 질문을 하길래 "No"라고 대답을 하고 접종 장소 안으로 안내되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 여성분이 설문지와 함께 접종 후 증상과 관리, 코로나 19 백신에 관한 정보지를 나누어 주었다.
설문지는 알러지가 있는지 1차 접종 후 겪은 증상이 있는지 등등 아주 간단한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앞의 사람들을 따라 한걸음 한 걸음씩 줄어드는 줄에 동참을 한다. 안내하시는 분을 따라 다시 한번 작성한 설문지에 대한 확인을 받고 이제는 정말 백신을 맞기 위한 대기자 줄에 들어섰다.
넓은 공간에 일렬로 의자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넓게 떨어진 의자 열 사이가 투명한 막으로 가려져 있다.
각 의자 사이사이마다 또 작은 막들을 세워 분리해 놓았다.
그 열 중간중간마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사람이 뒤에서부터 앞으로 움직이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팔에 백신을 접종하고, 그 간호사를 따라 한 명의 사람이 서서 노트북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모습이 보인다.
각 사람 앞에 세워진 가림막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웠던 사람이 일어나서 나가면 스텝 분이 와서 노랑 종이를 떼어내고 의자를 소독한다.
의자 소독이 끝나면 대기줄에 있던 사람들이 새로 그 빈 의자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빈 의자를 채워가는 대기자들이 한 명씩 내 앞에서 사라지자, 내 차례가 되었다.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서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없다. 그저 다들 앞만 보고 앉아 있는 듯하다.
노란 종이를 보니 시간이 적혀있다. 아.. 저 시간에 나가라는 걸까? 생각을 하는 찰나, 내 앞에 앉은 이가 "6:04" 이란 숫자에 따라 6시 4분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백신 후 증상과 관리법이 쓰인 내용을 기다리며 읽고, 코로나 19 백신에 대한 설명서도 읽어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바로 내 뒤에 있는 사람에게 백신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나한테 올 줄 알았더니 옆 줄 뒷자리 아저씨에게 갔다.
그러는 사이에 저 앞에 있던 바퀴 달린 의자를 끌던 흑인 간호사 분이 갑자기 뒤로 의자를 끌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간호사분의 모습에 정신이 팔린 사이,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인사에 놀라 쳐다보았다. 아까 내 뒤에서 백신 설명을 해주었던 분이 나한테 왔다.
오늘은 모더나인데 괜찮은지 내 의견을 묻는다. 괜찮아요 라고 대답하며 2차 백신 접종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2차 백신을 맞고 2주가 지나야 만 백신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요 그러니 2차 백신을 맞고 2주가 지날 때까지는 꼭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손도 잘 씻고 거리 유지 잘해주셔야 합니다. 2차 백신을 다 맞고 2주가 지나면 16주가 지난 것이 될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갑자기 헷갈리네 하는 순간 간호사가 왼쪽 팔 쪽으로 다가왔다. 정보를 확인하며 질문을 던진다.
"16주 뒤에 2차 접종을 하라는 건가요?"
"아니요. 13주 뒤에 오세요."
사람들마다 말이 다르네. 더 헷갈리지만 우선 주사를 맞기 위해 팔을 걷고 긴장을 풀라는 소리에 팔에 힘을 빼보았다.
알코올의 시원함이 사라진 자리에 따끔한 느낌이 나더니 곧 뜨거운 느낌이 지나가며 백신 접종이 끝났다.
뒤 따라온 분이 손에 접종 확인 카드와 스티커를 하나 주셨다. 왠지 주사 잘 맞은 아이에게 주는 스티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백신 접종 카드와 함께 받은 스티커
그리곤 노란 종이에 "6:30"을 적어서 내 앞 투명판에 붙여준다. 6시 30분에 나가라는 말과 함께 혹시 속이 매쓰껍거나 어지럽거나 하면 손을 들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당부를 해주고 다음 사람에게로 갔다.
접종이 끝났다. 4시 45분에 줄을 서서 기다렸으니 6시 30분.. 참 오래 걸렸다 싶다.
그렇게 기대 안 하고 왔던 긴 줄 덕에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배고픔을 견디고 있었다.
아직 별다른 증세는 없다. 그저 주사 맡은 자리가 약간 화끈 거리며 뻐근한 느낌만 들뿐.
지난주 백신을 맞고 일주일간 미열과 몸살로 고생을 한 신랑을 보며 은근 걱정했는데, 내일 아침에 일어나 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으니 참 다행이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