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교 교장을 맡다.
순종하며 열심히 해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2021년 5월이었다.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서론이 좀 기셨던 거 같다. 갑자기 한국으로 완전히 가시게 되었단다. 고민하고 고민해도 "선생님 밖에 없어요"라며 갑작스럽게 내려놓아야 하는 교장 자리를 부탁하셨다.
너무 갑작스러운 부탁에 입에서 먼저 튀어나오는 건 어떻게든 거절해 보자는 핑곗거리다.
"선생님 제가 아직 어려서, 맡기에 좀 부담이 되네요"
어리다. 음.. 그래 봉사하시는 선생님들 중에서 나름 어린 축에 들어간다. 제일 나이 어린순으로 2번? 정도?
나이 40에 어리다는 핑계를 대면서도 당당했다. 난 내가 아직도 캐나다에 유학 왔던 22살의 나 같은 기분으로 살아서 그런 걸까?
"아고, 선생님. 한국에선 선생님 나이에 유치원 원장님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 그런가? 내 나이면 벌써 그런 자리에 오를 나이인 것이었던가?
어리다는 핑계가 입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머릿속에서는 나의 삶의 무게가 자꾸 맴도는데, 핑곗거리가 더 이상 말로 튀어나오지 않고, 자꾸 순종하자는 마음이 치고 기어들어온다.
아.. 기도도 해봐야 하는데, 덥석 하겠다는 긍정의 대답을 내놓고 말았다. 이런 것도 순종일까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생각도 않던 한글학교 교장 자리를 맡아버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중지되었으니, 할 일이 많이 없다며, 걱정 말라던 전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야속하다. 갑작스럽게 정부의 코로나 방침이 풀리면서 2021년 6월 6일 대면 예배가 다시 시작되었고, 그와 동시에 한글학교 수업도 다시 시작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닐 텐데도, 교회가 열리자마자 생각보다 많은 부모님들이 한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수업 준비를 위해, 매주마다 교회 사무실에서 교재를 복사하고, 수업 준비를 하며 코로나 덕에 뿔뿔이 흩어졌던 선생님들을 다시 모셔 오느라 진땀을 나는 시간을 보냈다.
해외 재외동포 재단에 소속되어 수업을 하고 있던 터라, 수업이 다시 재개되면서, 영사관님과도 연락을 하며 지원을 받기 위한 학교에 요청하시는 자료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수업도 받아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토요일에는 일도 하고,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한글학교 봉사를 해야 한다. 주중에 한글학교 수업 준비를 위한 일들을 더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몇 달이 흘러버린 기분이다.
이제 9월 학기를 위한 학생 등록도 마무리가 되었다. 큰일이 앞에 많이 남아있지만, 새 학기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기분이 든다.
부모님들과의 대화도 더 편해지고, 아이들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보내는 주일도 익숙해져 간다.
우리 반 아이들만 챙겨야 했던 선생님이 아닌 전체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보조 선생님들까지 어우르는 이 역할에서의 나는 관계 속에서 힘을 받고 있다는 긍정적인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나의 일주일이 가끔 벅차게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학교 전체를 이끌어가는 이 책임감으로 견디어 봐야겠다.
매주마다, 생글생글 웃으며 숙제를 다 했다고 자랑하는 아이들의 얼굴,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을 위해 커피와 도넛을 들고 오시는 학부모님의 마음 그리고 매주 수업을 위해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이 함께 해 주시는 이 열정이 나를 움직인다.
그 덕에 이렇게 이 글을 쓰기까지 몇 주의 시간이 걸려버렸지만, 이렇게라도 글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