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네 명의 아이를 모유수유로 키운 이유

모유 수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예비 엄마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에는 항상 모유 수유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오곤 했다.

막내가 커버린 뒤로는 더 이상 육아 게시판을 방문하지 않아 현재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이 모유 수유에 관한 글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토픽 중에 하나 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네 명의 아이를 무통주사 없이 자연분만을 했다. 그리고 네 명의 아이를 만 1살이 될 때까지 모유 수유를 했다.

나는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완모맘(모유 수유를 끝까지 한 엄마)이다.


내가 완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분유를 사서 먹일 돈이 없었다. 다행히 분유를 사서 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모유가 충분히 나와줘서 우리 아이들 넷은 다 모유를 먹고 컸다.


모유를 먹일 것인가? 분유를 먹일 것인가? 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많다. 모유가 아이에게 더 좋다는 의학적 증거들이 나오고 있고, 분유가 좋다는 의견이 항상 맞물려 대립하듯 논쟁은 끊임이 없다.


이런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들을 다 뒤로 날려 보내고 딱 하나만 생각하면 모유와 분유 사이에서 나오는 갈등과 논쟁은 해결된다.


모유로 키우나 분유로 키우나 아기는 잘 자란다.

결국 초점은 '엄마'이다. 엄마가 모유를 선택하면 모유로 키우는 것이고, 엄마가 분유를 선택하면 분유로 키우면 된다.


모유가 좋다. 분유가 좋다 의견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이다.


아무리 분유를 먹이고 싶어도 분유값이 감당 안되면 모유를 먹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모유를 먹이고 싶어도 엄마 몸이 그만큼 따라가 주지 않으면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다.


나는 안타깝게도 분유를 선택할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 가난한 유학생과 결혼해서 꾸린 가정은 항상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첫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의 물건들을 전부 얻어 써야 했고, 얻을 수 없는 물건만 구매를 했었다.


SIMILAC CLUB에 가입하면 샘플과 쿠폰등을 보내준다.
네슬레 홈페이지에 가서 회원가입을 하면 아기를 위한 baby pack을 보내준다.

캐나다에 있는 분유 회사 홈페이지에 가서 임신을 등록하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분유 샘플을 한통 보내주고, 분유를 할인해서 살 수 있는 체크를 보내준다.

Similac이나 Nestle 홈페이지에 가면 등록할 수 있다.


네 명의 아이를 모유 수유하며 겪은 일


모유수유는 쉽지 않다. 나는 한쪽이 함몰유두였는데, 첫 딸이 모유를 먹기 위해 유두를 입에 물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

아기는 모유를 '살기 위해' 빤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의 젖을 '죽을힘을 다해' 빤다.


첫아기를 낳고 첫 수유를 한 유두는 까지고 피가 난다. 상처 입은 유두가 회복될 새 없이 계속 젖을 찾는 아기를 먹이느라 상처는 계속 덧나고 덧난다.


첫아기를 낳은 엄마의 미숙함이 가득했던 내가 아기를 좀 더 편하게 젖을 물리기 위해 했던 방법은 아기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 안고 함몰된 유두를 잘 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포즈였다.


다 까진 유두를 아이 입에 물리면, 죽을힘을 다해 빠는 아기의 힘에 쓰라린 통증이 몰려온다. 그러면 그 아픔이 너무 커서 아기의 머리를 감싸 안은 내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곤 혹여나 아기 머리를 너무 세게 잡아 아기가 다칠까 겁이 나서 온 힘을 다해 힘을 빼고 아픔을 견디어 냈었다.


그렇게 한 달은 적응하자 나의 고통도 무디어가고 아기도 젖을 빠는데 익숙해지며, 나의 함몰된 유두가 아기를 위해 점점 모양을 변형시켜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키운 첫 아이가 23개월이 되었을 때 둘째를 낳았다. 둘째의 수유를 시작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두 번째인데, 첫 번째처럼 힘들라고?


이런 어리석은 생각 같으니라고. 죽을힘을 다해 빠는 아기의 힘에 또 상처를 입은 내 몸은 고통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또 새로 태어난 아기를 안고, 함께 적응을 했다.


그렇게 겪은 네 번의 모유 수유. 그 고통은 첫 아이부터 넷째 아이까지 변함없이 똑같았다. 다른 것이라곤 내가 더 익숙해져서 좀 더 수월하게 내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뿐.


만 30살에 아들을 낳았다. 첫아들이었다. 먹는 양도 딸이랑 틀리게 더 많이 먹으려 들었다.

내 몸은 2년이나 더 늙었고, 아기가 충분히 먹을 만큼 모유가 빨리 돌지를 않았다.


철철 넘치던 2번의 출산과 다르게 모유의 양이 작게 느껴졌다. 그래도 모유만 더 고집했다. 애가 빨면 빨수록 더 양이 늘어난다는 것을 이미 겪어본 경험자의 자만이었다.


출산 후 7일 만에 갔던 첫 검진에서 황달 검사를 위한 피검사를 받았다. 그 날 저녁 9시 검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기의 황달수치가 너무 높으니 위험하다며 빨리 응급실에 가라는 전화였다.


두 아이를 챙기고 아기를 챙겨 신랑과 함께 어린이 병원 응급실로 가니 바로 아기를 입원시켜 주었다. 아기를 병실로 데리고 가서 인큐베이터에 넣어 광선치료를 시작했다.


병실에선 엄마와 아기만 있어야 한다며 신랑과 두 딸을 집에 돌려보내는 병원. 입원한 동안 모유를 먹이지 말라며, 아기 분유를 시간별로 가져다주고 나에게는 유축기를 가져다주었다. 아기에게 먹이지 못해도 계속 유축을 해 줘야 한다며..


그렇게 위의 두 아이들과 떨어져 2박 3일을 지내며, 아기를 봐주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2박 3일을 지내고 나자 갑자기 모유의 양이 확 늘어나면서 넘치게 나오기 시작했다.


내 몸이 많이 힘들었었구나 싶었다. 셋째를 출산하고 두 아이를 함께 돌보며 아기를 키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쉼 없이 젖만 물리니 내 몸이 그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했었나 보다. 그렇게 아기의 입원을 계기로 잠시 쉼을 얻은 내 몸은 그때서야 내 아기를 위한 모유를 잘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넷째를 낳았다. 내 몸은 그 사이 2년이 더 늙었다. 10일 만에 돌기 시작했던 셋째와 다르게 내 몸은 더디게 모유를 만들어냈다. 이미 셋째의 황달을 겪은 터라 부족한 모유를 샘플로 받아놓은 분유로 채워가며 모유 수유를 지속했다.


처음에는 모유 양쪽을 다 빨고도 100ml 넘게 먹어대던 분유의 양이 80, 60, 40으로 줄더니 한 달이 되던 날, 모유를 다 먹은 막내가 분유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모유가 충분히 나오기 시작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분유를 함께 먹일 수밖에 없었던 그때, 분유값이 걱정되어 맘이 참 조급하기도 했던 거 같다.

매달 들어가는 기저귀 값도 있는데, 분유까지 먹일 생각에 참 아찔했던 마음이었다.


그래도 결국 아이넷을 다 모유를 먹이며 키울 만큼 견뎌낸 내 몸. 그렇게 혹사된 내 몸은 아마 나이가 많이 들고나면 그 티가 나겠거니 하며 살고 있다.


모유를 먹이든 분유를 먹이든 엄마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분유를 먹인다고 아기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질 않길 바란다. 분유를 먹인다고 아기를 덜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와 넷째에게 분유를 먹였다고 말하기 그럴 만큼의 분유만을 주긴 했지만, 그 분유를 먹이기 위해 젖병을 소독하고 매시간 물을 데우고 분유를 태워 온도를 맞추고 하기까지의 수고로움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분유를 먹이기까지도 너무 큰 수고가 들어가기에 아기를 분유로만 키운 엄마들의 정성도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한다.


모유를 먹이면 젖병 소독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수고를 하지 않은 나는 분유를 먹이며 매번 그렇게 소독을 하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어 존경심이 막 샘솟았었다.


결론은 '엄마'이다. 엄마의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아기를 키우면 된다고 본다.

오늘도 아기를 위해 모유 수유와 분유 수유를 고민하고 계신다면, 아기를 우선 뒤로하고, 엄마인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생각하며 결정해 보시길 바란다.


아기를 건강하게 사랑하며 키우기 위해선, 결국 엄마의 마음이 편하고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게 우선인 듯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저귀 떼기 훈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