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과 안보는 것과 외면하는 것
‘제발 눈치 좀 챙겼으면’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하곤 한다. 한 번뿐인 내 인생 남 눈치 보며 소심하게 살라는 얘기다 아니다. 이 생각은 주로 TPO에 맞지 않는 대화를 이끌어 간다거나, 완곡하게 에둘러 전한 말을 못알아들을 때 하게 된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초등학교 4학년 중간에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숙제를 안해오거나 버릇이 없는 학생이 있다면 가차없이 죽자로 엉덩이를 가격하는 혈기왕성한 20대 후반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조막만한 아이들 어디 때릴 데가 있냐며 대들었겠지만, 그 때는 나 역시 작고 여린 아이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한 번도 빠짐없이 숙제를 해갔고, 선생님 눈썹이 조금이라도 치켜올라가는 날이면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 눈에 띄지 않게 노력했다. 아마 그 때부터 상대방의 민감한 표정 변화를 읽어내는 잡기술이 생긴 것 같다.
‘제발 눈치 좀 챙겼으면’
요즘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방금 눈치가 빠르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난 눈치가 빠르다. 그래서 지금의 희망적이지 않은 이 상황을 예전부터 다 알고 있었다. 그저, 애써 외면하고 있을뿐.
계속해서 외면할 것인가, 나의 원래 성정대로 눈치 챙기고 방향을 틀 것인가. 몇 달 동안 같은 고민을 반복 중이지만 아직도 가슴의 눈치를 보는 내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 제발, 눈치 좀 챙겼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