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로 가기에 앞서

진도 여행 이야기 (2)

by memory 최호인

이 여행에 참가한 인물들을 먼저 간단히 소개한다.

진도로 여행을 함께 갔던 사람은 남성 넷, 여성 둘, 합해서 여섯 명. 그중 다섯 명은 대학 동기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여성 친구의 친구이다. 희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러니까 우리의 친구의 친구는 이번 여행에서 나도 처음 보게 된 사람이었다.


진도 여행을 주도했던 사람은, 서울에서 살다가 진도로 은퇴하겠다고 마음먹고 진도에다 덜컥 집을 산 정상이라는 친구이다. 그와 함께 여성 친구들 가운데 똑똑하고 친근한 향숙도 여행을 주도했다. 그 외에 우리의 친근한 친구인 재관과 진태가 포함되었다. 사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서울에서 가끔 모임도 갖고 주로 단체 채팅방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다. 나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다행히 이들과 함께 여행길에 나서게 되었다.




2018년 여름, 서울에서 한 달 동안 머무르는 동안 나는 여러 친구들을 만났고 두 차례에 걸쳐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 한 번은 안동과 삼척으로, 다른 한 번은 군산과 전주로 각각 다른 친구 그룹과 여행했다. 이듬해 여름, 나는 다시 한국을 한 달간 방문했는데, 이 글을 쓰게 된 진도로, 그 다음주에는 제주도로 여행했다. 모두 여러 명이 가는 여행이라서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즐겁고 길이 추억으로 남을 여행이었다.


한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나는 친구 정상과 향숙에게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대학 시절 나와 가까웠던 친구들이며, 한국을 방문해서도 가장 먼저 찾았던 친구들이다. 정상은 자영업을 했다가 반 은퇴한 상황에 있었고, 향숙은 수십 년간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다행히 정상은 선뜻 여행 계획을 세워 주었다. 나는 미국에서 그들에게 여행할 수 있는 날짜들을 제시했고, 친구들은 8월 2일부터 4일까지 진도로 여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 주었다.


아아, 진도라니!


서울로 가기 전에 뉴욕에서 나는 진도를 여행한다는 계획을 듣고 대단히 들떴다. 가능하면 멀리 여행을 가자고 내가 제안하기는 했었지만 그 정도로 멀리 갈지 몰랐다. 더구나 전라남도 끝에 있는 섬까지 간다고 하니 더욱 기뻤다. 나로서는 섬으로 가는 것에 대한 낯선 기대도 있었고, 서울에서 가장 먼 곳까지 여행하게 되는 셈이라 더욱 흥미롭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 다녀올 것이라고 하면 뉴욕의 지인들은 나에게 한국에 가서 뭐 할 거냐 또는 왜 가냐고 질문하곤 했는데, 나는 지레 진도에 가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진도에 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운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이곳 동포들이 한국 방문길에 진도까지 여행 가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진도까지 나를 데리고 같이 여행할 친구들이 있음을 과시하려는 얄팍한 욕망이 마음속에 있었을 것이다.


6년 전인 2013년 여름 한국 방문에서 정상이 강원도 홍성과 고성으로 나를 데리고 갔을 때도, 나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서 일렁이는 바닷물 위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았다고 한동안 떠벌리면서 자랑했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별 걸 다 자랑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한동안 잊기 어려운 훌륭한 추억거리였다.


그 해에 다른 죽마고우들과 함께 강화도거제도도 방문했었다. 2019년에는 또 다른 죽마고우와 함께 제주도에 갔었으니, 이번 진도 여행까지 합하면 한국에서 가장 큰 섬 4개를 모두 가게 된 셈이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일생을 육지에서만 살아온 내가 섬에 간다는 것은 저절로 바다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뭔가 선망의 전경이 펼쳐질 것을 예견하게 하는 설렘이 따르는 것이다.




2018년에 자신의 6인승 차를 가지고 와서 함께 안동과 삼척 여행을 떠났던 규범은 불행하게도 이번 진도 여행에는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4월 회사 사람들과 자전거 여행을 갔다가 사고가 나서 목 뒷부분 신경을 다쳤다. 그 바람에 전신마비 증세가 발생했고, 수개월째 병원에 입원해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나는 서울에 도착한 후 일주일 만에 규범을 보기 위해 그가 입원해 있는 서울 북부 병원으로 그를 찾아갔다.


7월 20일.

서울 지리에 어두운 나는 양재역에서 대학 동기 친구인 희선 (진도 여행을 함께 가는 희선과 공교롭게 이름이 같다. 그래서 원래 우리의 친구인 희선은 '큰 희선', 진도 여행을 갔던 희선을 '작은 희선'으로 부르기로 했다.)을 만나서 규범의 병원으로 함께 갔다.


큰 희선은 작년에 안동과 삼척으로 여행 갈 때 동행했던 친구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그녀는 밝고 수줍은 얼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을 방문하면서 강남역 부근에서 머물게 되는 바람에 겨우 한 정거장 거리에서 일하는 희선을 자주 보게 되었다. 어딘가 순박한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이번 서울 방문에서도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무더운 여름이 와도 집안에 에어컨이 없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기록적인 폭염이 덮친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에어컨을 들여놓았다고 해서 내가 깜짝 놀란 바 있다. 물론 그녀가 돈이 없어서 에어컨을 장만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환경보호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녹색 환경주의자'란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났더니 하는 말이 또 걸작이었다. 올여름은 작년처럼 덥지 않아서 작년에 기껏 들여놓은 에어컨을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그래서 에어컨 들여놓은 것이 후회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아, 그 어이없는 말을 얼굴 표정도 별로 변하지 않고, 천연스럽게 해맑은 모습으로 말하는 희선을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양재역에서 북부 병원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는 병원 인근에 있는 양원역에서 내려서 걸어갔는데, 그곳이 경기도인가 착각할 정도로 거리가 한적한 느낌을 주었다. 그곳은 그러나 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었다. 결국 동네 사람에게 물어서 병원을 찾았다. 병원 1층은 한산해 보였다.


2층에 있는 그의 병실로 찾아갔을 때 마침 규범은 없고 그의 아내가 있었다. 희선과 그녀는 작년 가을에 규범이 새집으로 이사 가서 집들이할 때 만난 적이 있어서 서로 금세 알아보았다. 규범은 병원 휴게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활짝 웃으면서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는 규범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수개월째 환자인 그는 밝은 얼굴이었고, 친구들이 온다는 소식에 가볍게 들뜬 듯했다. 많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한 우리는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는 아침나절에 병원 복도를 네 바퀴나 걸어서 돌아다녔다는 등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지만,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했다. 정상과 자전거 여행을 자주 했던 그가 이렇게 아픈 상태에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이번에 아프기 전까지 그는 이사 전문 회사를 운영했다. 그가 다친 이후, 그의 사업은 다행히 그의 아내가 이어받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에 비해 그의 얼굴은 환해졌고, 아픈 것에 비해 밝은 모습이었다. 그는 북부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멀쩡하고 건강한 편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입원 초 첫 한 달간 완전히 움직이지 못해서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것도 적응되다 보니 있을 만하다고 했다.


"규범아, 너는 병원 체질인가 보다. 작년에는 얼굴이 어두웠는데, 이제는 너무 환하고 좋아 보여. 너 계속 여기 있어야겠다"라고 나는 농담했다.


키가 큰 데다 어깨가 꾸부정하고 실핏줄이 터져서 언제나 눈이 빨갛게 보였던 그는 정말로 온화해졌고 맑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그가 병원에서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의 평안을 찾지 않았나 생각했다. 몸의 불편함이 그에게 오히려 득도하는 힘을 주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의 그러한 평화로운 마음이 지속되기를 속으로 바랐다. 착하디 착한 그는 자신이 여행을 같이 가지 못하지만, 친구들을 위해 육인승 자동차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뭐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착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그의 제안을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규범을 만나는 병원으로 정상과 진태도 찾아왔다. 규범의 얼굴도 볼 겸 여행을 가기 위한 계획도 구체적으로 협의할 겸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진태를 대학 시절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라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가 보다.


나는 그의 현재 모습에서 금세 대학 시절의 옛 모습을 찾아냈다. 아니 그의 본 모습이 저절로 드러났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외모뿐 아니라 말투와 행동까지. 진태는 편의점 사장이면서 밤에는 학원의 영어 강사이기도 하다.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사는 그의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병원에서 나가기로 했다. 규범도 다행히 아들이 차를 가지고 와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정상은 닭백숙을 먹자고 했다. 그러나 희선은 언니를 만나야 한다면서 먼저 떠났다. 우리에게 자동차가 없었지만, 정상이 식당에 연락하자 식당 주인이 차를 몰고 왔다. 미국에서는 결코 보기 힘든 참 희한하고 편리한 서비스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일반적인 가게가 아니라, 개인 집 마당 같은 곳이었다. 비탈진 언덕에 있었는데, 언덕 아래로 큰 도로가 있었고 바람이 시원한 곳이었다. 정상은 도대체 처음에 저런 곳을 어떻게 알고 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곳이 망우동이라서 그런지, 우리가 앉은자리가 과거에 공동묘지였으리라고 짐작되었다. 마당에 있는 평상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닭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막걸리부터 들어왔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규범이 왔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것이다. 20대 후반의 장성한 아들은 정말 듬직하고 착해 보였다. 규범도 대학 시절에 그 아들처럼 잘 생겼었나 다시 기억을 더듬을 정도로 그의 아들은 훤칠한 미남이었다. 그는 평상에 앉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휠체어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이어서 혁국이 도착했다. 부천에서 북부 병원까지 먼 길이었지만, 그는 규범과 나를 비롯해서 여러 친구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 점심 이후에 그는 나와 함께 일산에 있는 성종과 수경 부부를 만나러 가기로 이미 약속했었다. 성종과 수경은 우리 과의 동기 부부다.


며칠 전, 내가 성종에게 연락했을 때 성종은 나에게 일산으로 오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일산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지도를 보니 강남역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다. 너무 멀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나 혼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혁국도 만날 요량으로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다.


나는 작년 여름에 혁국의 계획 하에 군산과 전주로 여행을 갔었다. (그때 갔던 여행 기록은 이미 '전라북도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으로 발행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jeonbuk ) 그는 초등학교 시절까지 군산에서 자랐다고 했다. 듬직하고 우직한 그는 겉으로는 짐짓 자주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긍정적으로 실천하는 스타일의 인물이다.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에게 함께 지방 여행을 가자고 말했었다. 만약 그 여행이 성사되었다면, 작년에 군산과 전주로 돌았던 팀은 이번에는 전북 정읍-고창-영광 등으로 여행 갔을 것이다. (고창-정읍 여행은 결국 2023년 가을에 이뤄졌으며, 그 여행 기록도 '전라북도를 찾아서'에 함께 담았다.) 그러나 군산 여행팀은 멀리 못 가는 대신 인천과 부천을 돌면서 하루를 보내기는 했다. 어쨌든 혁국과 나는 그날 점심 이후 일산에 사는 성종과 수경을 만나러 갔다.


부천에서 병원까지, 그리고 병원에서 일산까지는 꽤 먼 거리인데, 혁국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불평도 없었다. 그날 늦은 밤에 일산에서 부천까지 다시 가야 했으니, 그는 지리적으로 서울을 가운데 놓고 아주 커다랗게 삼각형을 그리면서 다닌 셈이 되었다. 그날 성종과 수경을 만난 우리는 일산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밤 10시 반쯤 나는 막차를 걱정하면서 버스를 타고 강남역으로 돌아왔고, 혁국은 내가 떠난 후에 대리운전으로 갔을 것이다. 혁국아 그날 애써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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