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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r 12. 2024

진도로 들어가다

진도 여행 이야기 (5)

길은 가도 가도 계속 뻗어 있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니, 우리는 드디어 전라남도 해남 땅에 들어섰다. 전라남도에 들어선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를 만나러 왔던 이후 30여 년만에 처음이다. 정상은 진도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고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시간이 늦기도 했고, 진도에 있는 숙소에 가면 저녁을 해 먹을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도에다 집을 사놓기만 했지, 아직 서울에서 진도로 이사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봐야 살림살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귓가로 흘려 들었던 정상이 말하는 사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의 집에 도착한 후에 알게 되었다.


서울부터 진도까지 차를 타고 가는 것은 정말 먼 길이었다. 좁은 국토에서 어쩌면 찻길로는 가장 먼 길일 것이다. (그나마 강원도에서, 가령 강릉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충청남도에 들어선 이후에는 딱히 교통이 막히지도 않지만 해남이 가까웠을 때는 이미 오후 7시가 넘은 상황이었다. 여행의 시작이었고 차 안에는 여섯 명이나 함께 앉아 있었으므로 지루한 것은 없었다. 진도까지 간다는 설렘 속에 우리는 자두를 먹으면서 끊임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라남도에 들어설 때부터 정상은 인터넷을 통해 저녁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는 이내 괜찮은 식당을 찾았다면서 전화를 걸어 예약했다. 이미 시간이 꽤 늦었으므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시골에 있는 식당이라 곧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정상은 설명했다. 그의 선견지명으로 우리는 다행히 해남에 있는 어느 뷔페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해남 하면 나는 언제나 '땅끝마을'을 연상한다.

반도의 끝에 있다는 땅끝이라는 단어는 묘한 설렘과 매력을 준다. 무엇인가의 끝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허하고 허탈한 느낌! 너머로 더 이상은 없기에 우리의 욕망은 거기서 더 나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욕망과 설렘이 마지막 지점에 쌓이고 사람들은 아쉬워한다. 거기에 마치 이루지 못하는 그리움과 연민이 멈추고 고인 것처럼.


하지만 현실은 이럴 것이라고 짐작한다. 땅끝이라고 해도 지리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기분만 그런 것이지, 막상 가 본다면 다른 바닷가와 별다른 풍경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바닷가에 갈 때마다 우리는 어떤 땅끝에 도달하는 것이다.


오래전에 미국 플로리다 주 최남단에 있는 섬인 키웨스트 (Key West)까지 여행했던 때가 있었다. 플로리다 주 동남쪽 끝에 있는 마이애미 시에서 무려 세 시간이나 달려간 곳이었다. 이 섬은 미국 본토에서는 가장 남쪽에 있기 때문에 유명한 곳이다. 미 동부 해안가를 가로지르는 1번 국도의 종착지점인 키웨스트에서 쿠바까지는 145km에 불과하다.


키웨스트는 카리브해에 있는 여러 섬들을 다리들로 모두 이어서 마이애미 시로부터 자동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곳이다. 섬들 사이에는 바다 위로 아주 긴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양옆으로 연한 녹색의 카리브해가 펼쳐져 있다. 바다가 연한 녹색인 것은 물속에 있는 플랑크톤의 성질 때문이다. 뉴욕에서 볼 수 있는 북대서양 바다 색깔은 훨씬 진하고 파도도 높아서 바닷속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카리브해는 파도가 잔잔하고 물속이 투명하게 잘 보인다.


날이 좋으면 망원경으로 쿠바가 보인다는 키웨스트의 땅끝에 이르면, 드럼통 모양의 조형물에 '미 대륙 최남단 지점 (the Southernmost Point of the Continental US)'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 본토의 남쪽 끝이다. 해저무는 늦은 오후, 기껏 거기까지 가서 하염없이 남쪽 바다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허망함이 생각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둥그런 지구에서 어느 한 곳 땅 끝 아닌 곳이 있겠는가. 우리는 지구 중심으로부터 언제나 땅 끝에 서 있다. 그리고 매일 땅끝에서 땅끝으로 다닌다. 우리가 사는 시간도 그렇다. 매일 매시간 우리는 시간의 끝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농담 같지만 사실이다. 생각을 바꾸면 현실도 바뀔 듯하다. 우리는 언제나 지구에서 최신이자 마지막 순간에 땅끝을 걸으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해남에 들어섰지만, 땅끝 마을까지 가지는 않았다. 정상이 차 안에서 맛집을 찾아서 미리 예약한 덕분에 우리는 식당에 마지막 손님으로 들어갔다. 시골 인심인지, 주인아주머니는 후덕하고 서글서글한 말씨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울에서 오셨지예. 먼 길 오셨네."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렸던 아주머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었다. 식당에는 물론 우리밖에 없었다.


뷔페식당에서 자리를 잡자마자 우리는 허겁지겁 접시를 집어 들었다. 다양한 음식들이 줄지어 놓여 있어서 우리는 접시에 한가득 여러 가지 음식을 담았다. 남도 중에서도 남도의 음식들이라서 약간 짜기는 해도, 나에게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뷔페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두 접시도 제대로 비우지 못했다. 하긴 차에 앉아서 몇 시간이나 있었으니 밥맛이 그리 좋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온 이래 줄곧 음식을 사 먹기만 했던 나는 맛있다고 설레발치면서 두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가 식사하는 중에도 맛이 괜찮냐, 부족한 게 없냐고 살갑고 상냥하게 물었다.


"맛있는데 약간 짜네요. 남도 음식이라서 그런가."

입발림소리 않고 거의 언제나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향숙과 작은 희선이 말했다.

"전라도 음식이라 그라제. 서울 사람들에게는 짤 거야."

주인아주머니가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 대답했다.


우리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8시 무렵이었고 밖은 여전히 밝았었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밖은 완전히 캄캄해졌다. 겨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캄캄한 밤이 된 것이다. 도시에서는 밤이 되어도 주변에 불빛이 많아서 그리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시골에서는 사위가 온통 캄캄하기만 했다. 식당 전방에 보였던 산도 어둠 속에 잠겨서 산 등성이를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불빛을 보지 못하면 도시 사람들은 마음이 불안하고 급해진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왠지 서둘러 숙소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문제인지, 다음날 아침에 먹은 라면이 문제인지 모르지만, 여행 이틀째 낮부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그 작은 고통은 내가 서울에 돌아온 이후에도 한 주일이나 더 이어졌다. 결국 약국에 가서 사정을 말하자, 약사가 지사제를 먹으라고 했다. 진작에 약을 사 먹었다면 작으나마 고통을 줄였을 텐데 공연히 고통을 오래 끌었다고 후회했다. 여행이란 항상 예상하지 않은 고통도 수반하는 법이다.




식사 후 차에 오른 우리는 진도대교로 들어섰다. 밝은 낮이라면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을 바다는 밤이라서 다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닷물이 울음소리를 낸다는 울돌목이 다리 아래에 있을 테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도대교는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에서 진도 본섬으로 이어진 국내 최초의 사장교이다.


사장교 (cable stayed bridge)는 현수교 (suspension bridge)와 다르다. 두 다리 모두 양쪽에 주탑을 세우고 케이블들로 상판을 지탱한다. 하지만 사장교는 주탑에서 내린 케이블을 바로 상판에 매어서 지탱한다. 반면 현수교는 주케이블로부터 보조 케이블들을 내려서 다리 상판을 매어서 지탱한다. 그로 인해 현수교에서는 케이블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 결과 주탑 간 거리는 현수교에서 더 멀리 건설할 수 있다.


사장교는 주탑 간 거리를 1킬로미터 이상 넘기기가 어렵다. 그러나 공사비는 현수교에 비해 20~30%나 저렴하다. 하지만 요즘 다리 밑을 통과하는 선박들이 대형화하면서 주탑 사이를 더 넓게 할 필요가 생겼다. 따라서 주탑 사이를 더 넓게 만들 수 있는 현수교 건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진도대교의 길이는 484미터이다. 원래 진도대교는 1984년에 완성되었다. 2005년에는 제2 진도대교를 추가로 개통시켰다. 그럼으로써 두 개의 사장교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주탑이 A자 형태로 세워진 것도 독특하고 교량 가운데를 볼록하게 올린 형태로 만든 것도 특이하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과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진도대교 야경 (출처: 진도군 관광문화 사이트)


진도대교 밑에는 명량대첩으로 유명한 울돌목이 있다. 울돌목은 바다가 운다고 해서 명량 (울 명, 대들보 량)이라 한다. 그만큼 물살 소리가 크다는 것이다. 울돌목 또는 명량해협의 가장 좁은 폭은 300m에 불과하다. 섬과 육지 사이 거리가 짧기도 하고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사장교든 현수교든 바다에 교각이 없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 낫다.


만약 우리가 밝을 때 도착했다면 진도대교 옆에 있는 진도 타워도 보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 가서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밤은 깊었고 우리는 그저 여기가 명량이구나, 하면서 다리를 건넜다. 밤에 보는 진도대교는 아름다운 빛으로 빛났다. 야간 조명을 받아서 진도대교는 검은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도대교 옆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출처: 진도군 관광문화 사이트 (jindo.go.kr))


섬이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섬이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물로 둘러싸여 있는 섬에 다리를 연결해서 자동차로 들어가므로, 섬에 가는 분위기는 배를 통해서만 가야 했던 과거와 같지 않다. 다리를 통해 건너감으로써, 여러 조건으로 출항이 제한되는 불편함과 비릿한 물 냄새를 맡는 불편함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와 함께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 낭만도 함께 사라졌다.


우수한 건설 기술로 인해 이제 수많은 섬들이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고 있다. 섬사람들은 육지로 빠르게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좋을 수도 있지만, 외지인들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다. 하여간 육지와 다리로 이어진 섬들은 더 이상 배를 통해 왕복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섬에서 배는 이제 그저 물고기를 잡는 기능만 하게 되었다.


섬에서 육지를 오가던 배들과 그 배를 운영했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과거로 묻혔다. 육지 내에서 다리를 통해 다른 육지로 넘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다리가 놓인 섬은 육지의 또 다른 끝이 되었고, 섬이 가지고 있던 고유하고 고즈넉한 고독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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