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행 이야기 (3)
1.
사실 이번 진도 여행은 계획 단계에서 폐기될 뻔했다.
아픈 규범 외에도 작년에 함께 여행 갔던 희선 역시 개인적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었다. 희선이 불참하겠다고 한 결과, 향숙은 그러면 자신도 여자로서 혼자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는 충분히 이해되기는 했지만 그 바람에 여행 계획은 파국 위기를 맞았다. 여성 친구들이 가지 않으면 아쉽지만 나는 남자끼리 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상은 향숙이 가지 않는다면 자신도 여행 가지 않겠다는 투로 나왔다. 그리하여 여행의 존폐 문제가 갑자기 향숙의 결정에 달리게 됐다.
닭백숙을 먹으면서 우리는 여행에 관해 논의했지만, 향숙의 굳은 얼굴로 인해 분위기는 급속히 어두워졌다. 향숙은 여성 혼자라면 가지 않겠다고 재차 완강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난처한 얼굴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 그렇지만 나 혼자라면 여행은 어려워.”
향숙의 어두워진 얼굴을 보면서 나는 아쉬움 속에 당장 결정하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지 말고 가도록 하자. 여행 날짜에 맞춰서 나는 숙소 예약까지 비워뒀는데, 이렇게 되면 나는 어디에 가서 자니?”
물론 여행을 가지 않게 된다면 숙소야 다시 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향숙에게 과장해서 말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식당으로 규범의 아들이 도착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규범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저 인사만 하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진도로 여행 갈 것을 계획해서 그 날짜에 숙소 예약을 비워 두었던 내가 조금 강력하게 향숙에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여행을 가자고 주장하자, 난처해진 향숙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아예 입을 다물었다. 무작정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나는 결국 거의 여행을 포기하는 마음이 되었다. 상황이 난처해지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향숙은 먼저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식당으로 혁국이 왔으며, 나는 그와 함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날 저녁에 일산에서 다른 친구를 만날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고대했던 진도 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혁국의 차에 탔고, 다른 친구들은 전철역으로 걸어가겠다고 했다. 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보니까, 향숙은 급히 먼저 앞서 가고 있었고, 정상과 진태는 심각한 얼굴로 대화하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사실 향숙은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안방마님’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명쾌하고 활발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이끄는 스타일이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그녀의 밝고 자상하고 호방한 모습은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했다. 분위기가 처지고 공기가 무거울 때 그녀가 없다면 그 누가 분위기를 밝고 가볍게 해 줄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다. 그녀는 나아가 회계 관리와 먹거리 등도 도맡아 해결하면서 회계 겸 관리부장 같은 역할도 했다. 우리는 여행 경비 계산을 그녀에게 맡겼고, 그녀는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면서도 알뜰하게 지출했다.
2.
위기는 엉뚱하게 해결되었다.
아니 향숙이 영리하게 위기를 해결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행을 가지 않을 것처럼 말했던 향숙에게 다행히 상황이 바뀌었다. 향숙은 우리들의 친구가 아니었던 다른 친구를 데리고 와서 여행을 같이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 친구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희선이다. 우리는 그녀를 우리의 원래 친구인 희선과 구별하기 위해 '작은 희선'이라고 불렀다. 사실 키나 몸집이나 향숙이 새로 데리고 온 희선이 더 작았다.
작은 희선 역시 중학교 역사 교사로 일하다가 얼마 전에 은퇴해서 이제는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하고 있었다. 향숙은 수년 전에 역사 교사 연수회에서 그녀를 만나서 친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전에 향숙과 정상 등이 있는 단톡방으로 초대된 그녀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녀와 한 번도 채팅방에서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같이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은퇴가 점점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볼 때, 역시 학교 교사 직이 비교적 빠르고 안정된 은퇴를 유도하는 것 같이 보인다. 요즘 아무리 사오십 대에 명예퇴직이 거론된다고 해도,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 가운데 그렇게 해서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학교 교사였던 친구들 몇 명은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 준비 중이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학교 교사는 대체로 30년만 근무하면 은퇴해서 매달 연금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고 한다. 겨우 오십 대 중반에 그 연한을 채운 후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여성 친구들은 대체로 여유로워 보인다. 그들에게는 한국의 은퇴 연금으로는 상당히 높은 액수가 매달 또박또박 나온다고 한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데... 그래도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찌 보면 모두 30년 이상 열심히 일했는데도 결과가 이렇게 다르게 나오는 것을 보면, 역시 한국에서는 교사와 공무원의 은퇴 정책이 가장 탄탄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노령연금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사회적 주제가 되었다. 국민연금 제도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뒤늦게 시작되었고 파행적인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수많은 노인들이 은퇴 후에 연금만 가지고는 살기 어렵게 된 탓이다. 연금제도가 비교적 탄탄하게 구축된 직업은 학교 교사와 공무원, 경찰과 군인 등으로 제한된다.
한국의 조기은퇴 증가 상황과 낮은 노령연금 수준은 노인층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선진국들 가운데 한국은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노인의 절반은 공식적으로 빈곤층에 속한다. 빈곤층 노인들은 은퇴한 후에도 일자리를 찾고자 해서 이십대 청년들과 극심한 저임금 일자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다른 정치적 사회적 이유들과 합해서 노인세대와 청년세대 사이에 깊은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이런 갈등과 위기는 오히려 심해지는 추세다. 그야말로 국민적 화해와 협조를 통해 국가적 연금개혁이 필요할 뿐 아니라 경제발전의 열매를 효율적으로 재분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없는 한 국가적 위기가 저절로 해결될 일은 없을 듯하다.
3.
정상이 노력해서 재관도 이번 여행에 합류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최종 참가자 여섯 명이 확정되었다. 남자 넷 여자 둘.
재관 또한 현직 학교 교사다. 그 역시 거의 30년 가깝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진도로 오가는 여행의 운전은 진태와 재관이 맡기로 했다. 나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미국에서 기껏 국제 운전면허증을 준비해서 가지고 왔지만, 결국 쓸모없는 일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작년 여름에 안동-삼척을 갔던 친구 그룹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때 같이 갔던 여섯 명 가운데 절반이 바뀌었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정상을 주축으로 하는 이 여행 그룹의 외연은 더욱 확장된 셈이다. 원래 이 그룹은 정상이 규범과 자전거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전거를 자동차 뒤에 싣고 곧잘 지방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자전거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사나이들이다. 나 같은 약골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정상이 올린 사진에서 그의 탄탄한 허벅지와 종아리를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규범은 외모는 우락부락하지만 실은 아주 온순한 성품이다. 그들이 철마다 자전거 여행을 다니는 것은 매우 부러운 일이었다. 그랬던 규범이 다쳐서 정상도 마음이 아플 것이 분명했다.
규범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한 날 이후 나는 서울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규범에게 여유가 되면 출국 전에 다시 들르겠다고 말했지만, 규범은 웃으면서 “바쁜데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가 여행 중인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을 내다본 것인지, 나는 결국 그를 다시 보지 못하고 출국했다. 친구들이 여행 가라고 자기 차까지 빌려준 규범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가 빨리 회복되어 다음에는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2018년 여름에 이들과 안동과 삼척을 여행한 후 서울에서 미약하나마 감상문을 짧게 기록했었다. 그러나 훗날 조금 더 자세하게 기록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여럿이 함께 여행할 기회가 도대체 우리 남은 인생에 얼마나 있겠는가. 이제는 그 한순간 한 순간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이번 여행 후에 나는 여행 소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에도 바쁜 여행 일정에 따라 그랬지만, 그 일은 안타깝게도 서울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세운 기록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뉴욕으로 돌아와서 일상을 정리하자마자 다시 욕심이 생겼다. 여행을 같이 했던 친구들에게 일종의 우정과 고마움의 표시이면서 책임감이랄까 하는 의식도 생겨났다. 그리고 나의 기억에 대한 도전을 하기로 했다.
삶의 한 장면을 이런 식으로 기록하는 것은 순전히 나만의 관점과 감상과 평가와 조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같이 여행했던 친구들은 내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만들도록 도와준 사람들이기에,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여행과 나의 기록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 작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여행은 어딘가를 찾아간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끔 혼자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누군가와 함께 간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것이며 공동의 경험이 된다. 그것은 때때로 간단하게 이루어진 듯하지만 사실은 긴밀한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간단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마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일 듯하다. 그것은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가 미국에서 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미국 이민생활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훨씬 자주 여행을 떠났을까. 모르겠다. 역사에 가정이 의미 없듯이 한 개인의 인생에도 가정은 단순한 상상일 뿐 의미 없는 낭비와 사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나는 분명히 미국 생활에 비해 친구들과 더 많은 여행을 했었으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