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행 이야기 (1)
나는 20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어느덧 한국에서 산 기간보다 미국에서 산 기간이 더 길다. 오래전에 이민 온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한국을 떠날 때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한국과 한국의 친구들을 바라볼 때가 많다. 그런 이유로 인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옛 감정을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과도하게 변하는 세태 속에 너무 긴 시간이 지난 후라 어쩔 수 없이 "너 많이 변했구나."라고 말하게 될 수밖에 없는 친구들도 있긴 하다. "근사해졌어." 또는 "멋있어졌네."라고 덧붙이면서.
나는 그런 변화를 애써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옛적' 친구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긍정적으로 친구들의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모르긴 몰라도, 세태변화를 따라가기에는 친구들보다 내가 더 느리고 더딜 것이다.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빠르고 극적으로 변했으니까.
이민 후 꽤 오랫동안 한국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던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진 채 지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자주 연락하거나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모두 각자 먹고사는 일로 바쁘게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변명할 수 있다. 나는 나대로 이민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한국의 친구들도 나름대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냈을 것이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행히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한국에서 2000년을 전후하여 온라인을 통해 어릴 적 동창들을 다시 만나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조금 더 늦기는 했지만 나의 대학 친구들 사이에도 새롭게 온라인 모임이 생겼다. 그전에도 친한 친구들끼리 지속적으로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모임이 생기자 훨씬 더 많은 친구들이 연락되고 모여들었다. 그렇게 온라인으로 발전한 모임은 다시 이따금 오프라인 모임을 유도했다.
이후로 나는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그렇게 해서 연락된 친구들까지 가능한 한 많은 친구를 만나고자 했다.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 이민생활은 외롭다. 한국인들이 비교적 많이 살고 있는 뉴욕시라고 해도 서울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한국인은 20만 명도에 불과하고, 그들은 각자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나는 한국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가능하면 가까운 친구들에게 지방으로 함께 여행하기를 요청하곤 한다. 서울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 나중에 개발된 강남을 빼고는 비교적 익숙한 곳이다. 물론 지난 십 년간 수차례 다시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제는 강남도 조금 더 익숙해지긴 했다. 하여간 서울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므로 혼자서 다니기에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지방을 혼자 여행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도 어색하고 낯설고 외로운 일이다.
이 여행기는 원래 2019년 가을에 적은 것이다.
그해 여름 한 달간 한국을 방문한 나는 대학 동기 친구들과 함께 2박 3일간 진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지방 여행은 우리들에게 더욱 오래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뉴욕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시차적응과 여행 후유증에 시달린 후 친구들과의 추억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것은 곧 내 인생의 기록이며 나아가 친구들과의 우정과 경험을 길이 새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친구들과 길게 인연을 맺는 것은 어찌 보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고 간단해 보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조국을 떠나서 살고 있는 나를 기억해 주는 친구들, 또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를 기꺼이 만나고 함께 여행해 준 친구들을 나는 매우 귀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마음은 더욱 애틋하고 깊어진다. 우리가 서로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자꾸만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여행기를 적으면서 나는 우리가 갔던 여행지와 유적 등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여행지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적는 데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여행 후 굳이 애써 기록을 남긴 더 큰 이유는 친구들과 함께 쌓은 추억을 길게 남기고 우리의 우정을 더욱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원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두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을 나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우정이 더욱 오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