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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r 16. 2024

진도아리랑체험관

진도 여행 이야기 (9)

어릴 때 학교에서 배웠거나 아니면 영화 ‘서편제’라도 보았다면 ‘진도아리랑’을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리 말하자면 진도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아리랑이나 경상도 밀양아리랑과는 다르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로구나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희망도 많다.’


기쁘나 슬프나 오랜 세월 진도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이 노래는 섬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졌고 고달픈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논밭이나 장터에서 흥이 나면 함께 부르고 누군가 즉흥적으로 가사를 입히곤 했던 이 노래는 원한을 풀고 서로 생명을 이루는 해원(解怨)의 노래이자, 상생(相生)의 노래라고 한다.


진도아리랑의 유래를 두고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이 노래를 체계화해서 보급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대금산조’를 지은 박종기 선생이라고 한다. 그는 1870년 또는 1880년에 태어났으며, 1939년 또는 1947년에 사망했다. 대금을 어찌나 잘 연주했던지 삼남지방에서 ‘박젓대’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젓대는 대금을 이르는 말이다.


진도의 문화예술에 관해 아는 것이라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웠던 진도아리랑밖에 없었던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진도가 매우 특별한 문화예술의 본고장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진도가 아리랑의 고장인 만큼 우리는 아리랑문화체험관으로 먼저 가기로 했다.

만약 인터넷에서 ‘아리랑박물관’이라고 조사하면, 진도 아리랑박물관이 아니라 강원도 정선에 있는 박물관이 나온다. 그러니까 2016년에 지어진 정선 소재 아리랑 박물관이 아리랑 박물관으로서 더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진도에는 아리랑박물관이 아니라 '아리랑문화마을'이 있고 그 안에 '아리랑체험관'이 있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아리랑박물관에 가보지 못했으므로 그곳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모르지만, 진도의 아리랑체험관은 단순히 보기만 하는 박물관을 넘어서 아리랑 노래를 듣고 부르고 가라는 의미에서 체험관으로 꾸며놓았다.



진도 아리랑마을 입구


이 체험관에는 진도뿐 아니라 전국에서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자료를 모아놓은 듯했다. 진도아리랑은 물론이고, 팔도 아리랑을 모두 배우고 불러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서 말 그대로 방문객의 학습과 경험을 위한 체험관이다. 아리랑의 역사와 함께 아리랑이라는 이름의 담배와 소설과 잡지와 영화와 음반까지 전시하고 있다.


1958년 1월 출시된 아리랑 담배는 우리나라의 첫 필터 담배라고 한다. 담배와 함께 아리랑 성냥도 아리랑의 대중화에 한몫했다.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소설에는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하는 고준석의 '아리랑 고개의 여인', 그리고 동일한 제목의 소설로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문열의 소설도 있다. 아리랑이 들어간 여러 책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다.


3층짜리 아리랑체험관은 마치 거대한 장구를 언덕 위에 놓은 것처럼 멋들어지게 지어졌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대한 아령을 연상시킨다.) 건물의 양쪽에 북을 연상할 수 있도록 둥그런 건물을 붙여놓았다. 실제로는 장구가 아닌 북을 본떠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것은 진도에서 북을 어깨에 맨 채 양손에 채를 쥐고 추는 양북 춤이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 놓인 체험관 건물의 크기는 오르막길에서 보아서 그런지 4층 이상의 높이로 보인다. 거대한 북같이 생긴 양쪽 둥그런 건물 사이에는 3층짜리 아리랑 체험관이 있다. 체험관 앞마당에서 앞을 내다보면 커다란 솟을대문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와 입구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멀리 산 사이에 바다까지 내다보인다.


아리랑체험관. 거대한 장구처럼 생긴 독특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민중의 한과 극복의 의지가 서린 것으로 알려진 아리랑은 전국 팔도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만주, 중국, 러시아, 미국에 있는 동포들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변형되면서 퍼져나갔다. 아리랑은 '아리랑'과 '아라리'라는 말이 후렴에 들어간 민요를 총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아리랑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관해  아직 뚜렷하게 알려진 정설은 없다. 여러 설들이 존재하지만, 신용하 교수는 아리랑이 '고운 님'이라는 뜻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리'가 '아리따운'과 같은 용법에서 보듯이 '고운' '곱다' '아름다운' '아름답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랑은 '사무치게 그리운 님'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아리다'라는 동사처럼 사랑에 빠져 마음에 상처를 받을 쓰는 표현이 있고, 형용사로는 상사병이 만큼 '사무치게 그리운'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하여간 현재 전국적으로 알려진 아리랑은 60여 종 3600여 수에 이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이 가장 유명한 3대 아리랑이다.


아리랑 박물관은 아리랑마을관광지 안에 있다. 인근에는 아주 근사하게 지어진 국립남도국악원이 있다. 진도는 확실히 소리의 고장이다. 진도는 아리랑 이외에도 다양한 무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로는 강강술래, 남도 들노래, 진도 씻김굿, 다시래기 등 4종이 있고,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로는 진도 북놀이, 진도만가, 남도잡가 등 3종이 있다.


진도 아리랑 박물관은 한반도에 있는 모든 아리랑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용이 빈약해 보였다. 한국인에게 아리랑이 그렇게 유명해도, 아리랑과 관련된 문화재는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향숙도 거대한 건물에 비해 내용이 빈약해 보인다고 말했다. 지방 자치 단체가 만들어놓는 전시용 건축의 소산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지 방문객도 거의 없었고, 박물관을 지키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올해 가장 무더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에는 에어컨도 작동되지 않았다. 하긴 사람들이 오지 않는데 굳이 에어컨을 켜면서 전기를 낭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리랑 공연장과 아리랑을 듣고 부를 수 있는 체험관이 있는 3층까지 올라갔던 나는 더위가 가득 찬 공간을 느끼고 잽싸게 내려왔다. 에어컨 없는 체험관 건물 내의 뜨거운 공기가 모두 3층으로 올라간 듯했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이 아니라 봄가을에 온다면 훨씬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면 공연도 관람하고 아리랑 노래와 춤사위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을 방문하면서 자주 있지도 않은 여행을 다니다 보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국 어디를 가든 전시관과 박물관과 기념관이 있는 듯하다. 6년 전에 여행할 때도 또 작년에 여행할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디를 가나 그런 전시관과 박물관이 있어서 잠시라도 쉬어가거나 눈요기거리가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이런 기념관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여행을 다니는 때가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 건물에 들어가 보면 관람객은 거의 없다. 큰 건물에 에어컨은 열심히 돌아가고 전시관과 기념관을 지키는 직원은 어쩌다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기다리가다가 지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전시용 건물이고 예산 낭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향토 문화재를 소개하면서 자기 지역도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지자체들은 앞을 다투어 그런 시설물들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훌륭한 박물관도 있지만, 많은 곳에서 내용물이 빈약한 채로 운영된다. 그래서 그런 곳을 방문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박물관과 전시관 등이 있어서 문화예술적 분위기는 있지만, 마냥 좋게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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