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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r 15. 2024

진도의 새벽

진도 여행 이야기 (8)

얼핏 잠들었다가 문득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친구들이 자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몇 시일까.


창밖을 보아도 캄캄하기만 한데 갑자기 어디선가 닭 우는소리가 들렸다. 옆집 또는 옆옆집에서 들려오는 듯한 닭 울음소리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이어졌다. 충전하느라 스마트폰을 멀리 두었기 때문에 나는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자는 둥 마는 둥 누워 있던 느낌으로는 새벽 서너 시일 듯했다.


닭은 동틀 때나 우는 게 보통 아닌가. 캄캄한 밤에 닭은 왜 우는 걸까. 그런 의미 없는 자문자답을 하는 가운데 목에 핏대를 잔뜩 세우고 횃대 위에서 우는 닭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주인을 깨우는 건지 주변에 있는 닭들을 깨우는 건지... 그렇게 공허한 생각들로 잠들지 못하는 나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조용한 밤에 혼자서 부산한 닭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저 닭이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새벽을 서둘러 당기기 위해 우는구나, 하는 생각도 났다. 그로부터 느낌상 20여 분이 지난 듯했는데, 다시 닭이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아까와 똑같은 닭의 울음소리. 새 이불을 깔고 우리가 여기저기 누워 있는 거실의 창밖은 여전히 캄캄했다. 처음에는 네 번 울었던 닭이 이번에는 여섯 번 울었다. 그 후에도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그 닭이 몇 번 우는가 세면서 잠을 설쳤다. 불행하게도 나중에는 다른 닭들까지 그 닭의 울음에 합세하여 여기저기서 꼬꼬오~하고 거창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인상적인지 아직까지도 내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다.


그러고 나서, 마치 연극 공연의 암전 상태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오듯이,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지기 시작했다. 새벽이 찾아왔다. 부지런한 정상이 제일 먼저 일어났다. 그로써 그날 밤 잠은 끝났다. 결국 모두 일어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간단히 얼굴만 씻고 바닷가로 가자고 했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저절로 친구들을 따라갔다. 집에서 걸어 나가도 바다가 있는데, 정상은 굳이 새벽부터 자동차를 타고 '접도'라는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는 또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 그곳에 항구와 방파제와 등대가 있다고 했다.




접도는 진도의 부속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접도는 원래 금갑도 또는 갑도라고 했었다. 하지만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와 워낙 가깝게 붙어 있어서 그냥 접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차를 타고 두 섬 사이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는 내 눈에는 두 섬 사이에 바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갯벌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밀물 때면 혹시 바닷물이 들어올지도 모르지만, 두 섬 사이는 언뜻 보면 그저 질퍽하고 거무스름한 갯벌이 있는 듯했다.


접도는 정상의 집에서 차로 10분도 안 걸릴 정도로 가깝다. 우리가 차에서 내린 곳은 접도의 항구인 수품항이었다. 원래 항상 그런 것인지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항구는 매우 평화롭고 조용했다. 아침 햇살이 밝은 거리에 마을 사람 몇 분만 나와서 배를 손보고 있는 듯했다. 항구의 한구석에 차를 세워둔 후, 우리는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늦게 나온 바람에 일출 광경을 놓쳤다.

해는 이미 바다 위로 야트막하게 떠올라 일렁이는 물 위로 점점이 길고 노란빛을 쏘고 있었다. 항구에서 방파제로 가는 길에는 해안 바위들과 모래 위에서 걷기 편하도록 나무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나는 땅 위에 다리처럼 꾸며진 구조물이 걷기에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산책로는 통나무를 잘라서 다리를 만든 것은 아니다. 톱밥을 압축시켜서 접착제로 붙이고 색칠한 것이라 실제로는 친환경적인 것이 아니라고 친구들이 말했다.


2019년 8월 3일 진도 부속 섬인 접도의 수품항에서 바라본 해돋이


우리가 항구에 도착할 때부터 하얀 개 두 마리가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걷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먼저 뛰어갈 수도 없었다. 개들은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등대를 향해 걸어갈 때도 계속 따라왔다.


시골에는 저렇게 줄로 묶어 놓지 않은 개들이 있어서 걸어 다니기가 조심스럽다. 아마 법적으로는 개들을 저렇게 기르면 안 될 테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 개는 자기 영역으로 들어서려는 낯선 사람을 보면 으레 경계하고 짓기 마련이다. 잘못하면 물릴 수 있어서 매우 무서운 존재다. 마을 길은 제한되어 있어서 줄에 묶이지 않은 개가 따라올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어느 선진국에서도 주인도 없는데 개들이 줄이 풀린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은 이제 후진국도 아닌데 왜 아직도 이런 모양인지 모르겠다. 시골이라 해도 면장이든 이장이든 제발 먼저 나서서 이런 점은 개혁하면 좋겠다. 개를 집 바깥에서 키우려면 돌아다닐 수 없도록 제대로 묶어두거나, 줄을 풀어놓았을 때는 개가 집 바깥으로 나올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여간 언뜻 보면 동네 잡종개 같아 보였지만, 그 개들도 진도에 있으니까 진돗개일 것이다. 개들은 방파제 있는 곳까지 따라오다가 우리가 먹을 것도 주지 않는 데다 재미없다고 느꼈는지 항구로 돌아갔다. 방파제에 올라서자 드넓은 바다가 드러났다. 접도 앞에도 조그만 섬이 여러 개 있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바다가 아름다워서 우리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해는 바다 위 흐릿한 운무 속에 있었지만, 거기서 노란빛줄기를 내뿜어서 잔잔한 바닷물 위에서 그 빛줄기가 우리를 향해 기다랗게 다가오는 듯했다. 방파제 도로 양옆에는 안전을 위해 두터운 철관으로 만든 가드레일이 있었고 그 앞에는 파도로부터 방파제를 보호하기 위한 거대한 테트라포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파란 하늘에 엷은 구름들이 새털처럼 하늘거리는 진도의 8월 아침 바다는 찰랑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호수처럼 잠잠했다.



접도 수품항 방파제. 끝에 등대가 보인다.


방파제에서 나온 우리는 정상을 따라 해산물 직판 가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수품항 바닷가에서 겉으로 봐서는 전혀 가게가 열려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두침침한 건물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그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시멘트로 만든 듯한 칸막이 수조들이 있었다. 수조 사이에 난 통로의 바닥은 젖어 있었다. 어떤 수조는 비어 있었지만 어떤 수조에는 물이 차 있었고 그 안에 물고기들도 있었다. 그런 것을 처음 본 나는 그곳이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들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짐작했다.


그곳을 통과하여 건물 뒤로 나가자 갑자기 해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나타났다. 뜻밖이었다.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는 듯한데 여러 가게들이 이미 장사를 하고 있는 듯했고, 해산물을 다듬으면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상은 뭔가 사려는 듯 가게들 앞을 어슬렁거리면서 진열된 해산물들을 살펴보았다.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서로 자기 물건이 싱싱하다면서 싸게 줄 테니 사라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상황이 매우 어색해서 나는 어디로 눈길을 줘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정상은 그런 상인들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해산물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가격만 물어본 후, 생각보다 비싸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생선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냥 가자고 했다. 그러나 실은 그의 집에는 아직 냉장고가 없어서 해산물을 사 가도 보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정상은 이미 냉장고를 주문했고, 냉장고는 그날 아침에 집으로 배달될 예정이었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정상은 우리와 함께 집에 온 김에 냉장고까지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정상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어느 오징어가게 앞에 섰다. 가게 안에는 오징어를 다듬는 여인이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정상에게 오징어를 사라고 자꾸 권하는 젊은 여인의 한국말투가 어색하게 들렸다. 그녀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니까 베트남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녀가 아마도 한국인 남편과 혼인하여 왔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녀의 옆에 필경 시어머니라고 생각되는 할머니도 계셨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비교적 한국말을 잘했다.


나는 그날 수품항에서 여러 명의 타국 출신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 동남아에서 온 듯 보였다.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으로 와서 최남단에 있는 접도까지 온 외국 출신 노동자들이 있다니! 나 또한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아주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코리안 드림'을 찾아서 언어장벽 문화장벽을 극복하느라고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 노동자들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농어촌에서 젊은 한국인들이 사라지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막상 접도에서 그들을 보니까 격변하는 현실이 더 잘 느껴졌다.


남아 있는 노인들마저 사라지면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농어촌에서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특히 젊은이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지방 도시들은 지속적으로 쪼그라들고, 중소도시의 위상은 축소되고 있다. 그로 인해 정부는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또 농어촌 총각들의 혼인을 위해 외국으로부터 젊은 노동자들과 혼인 배우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에 있는 외국 출신 내국인이 이미 300만 명에 이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때 단일민족이라고 했던 한국은 이제 새로운 다민족사회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서둘러 나가기 위해서 언제 먹어도 맛있는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컵 누룽지도 있었다. 우리가 밥을 거의 먹었을 때 때마침 냉장고가 도착했다. 그런데 배달 온 분은 겨우 한 사람이었다. 무거운 냉장고를 들여오기 위해 남자들이 힘을 써야 했다. 냉장고가 집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두 번째 출입구에서 직각으로 돌아야 한다. 그 지점에서 약간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냉장고는 무사히 통과했다. 큰 냉장고를 들여놓자 갑자기 부엌도 근사하게 변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급히 아침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정상의 여행 계획대로 움직이자면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할 판이었다.


진도로 가기 며칠 전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정상의 여행 계획은 이랬다.


2일. 서울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여 진도 숙소에서 1박.

3일. 접도 일출 전망대 - 수품항 - 아리랑 마을 - 신비의 바닷길 - 운림산방 - 용장산성 - 벽파진 전첩비 - 남진 미술관 -남도석성 - 팽목항 - 서망항 - 세방낙조 - 숙소에서 2박.

4일. 해남 녹우당 - 나주읍성, 영산포 - 광주 5.18 묘역 - 서울.


이 계획대로 움직이자면 언뜻 보아도 매우 바쁜 사흘이어야 마땅하다. 나는 특히 둘째 날에 갈 곳이 너무 많아서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듯하다고 생각했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역시 계획대로 다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것 말이다.


눈만 감고 있었지, 거의 밤을 새운 나는 아침부터 피곤했다. 맹렬한 더위로 인해 바깥에만 나가면 땀이 흘렀지만, 친구들 가운데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평 한 마디라도 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예의 바르고 점잖은 사람들이다.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성의와 의지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여행할 때 이런 사람들하고 다니면 편하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고 자신의 불편함을 계속 떠들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끊임없이 불평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작은 희선은 우리들 모두와 아무 어려움 없이 잘 어울렸다. 그녀는 원만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지닌 듯했다. 말을 천천히 부드럽게 하는 그녀는 대학 졸업 이후 줄곧 교사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3년 전에 은퇴했으며, 이후에는 편안한 나날을 보내는 듯 보였다. 그녀는 자전거 동호회에도 참여하고 있어서, 한 주에 한 번씩 자전거를 타러 간다고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정기적인 스케줄이 있어서 바쁘단다. 백수 백조가 바빠서 과로사한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이미 은퇴한 왕년의 교사들은 모두 바빠 보인다. 그들은 교직 30년을 채우자마자 은퇴한 후 연금을 받으면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매일 활동 스케줄이 있는 백조들이라니! 부럽다.


얼마 전에 은퇴하고 나서 할 일이 없어서 괴로운 은퇴 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을 찍은 여러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은퇴는 비극이라면서 미리미리 은퇴를 준비해야 즐겁고 의미 있는 백세 시대를 살 수 있다는 종류의 이야기들이다.


진짜 백세까지 살려나?

그때까지 사는 사람이 많아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문제일 텐데...


확실히 은퇴는 경제적으로 쪼그라들고 끊어지기 쉬운 인간관계로 인해 자칫 불행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특히 거의 직장 생활만 해 온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더 그렇다고 한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사교성 또는 사회성이 더 강하다고 해야 하나. 생물학적으로 여자들이 더 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평균 5년은 더 오래 사니 말이다.


차 안에서 은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진태는 은퇴하기에 앞서서 친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친구 그룹이 대여섯 정도만 있으면 돼. 매주 한두 그룹을 만나기만 해도 바쁠 거야."


맞는 말이다. 그런 친구 그룹들을 은퇴한 후까지 잘 보유하고 있다면 말이다. 물론 그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 지출해야 할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사람 만나면 모두 돈인데... 은퇴 후에는 일부 투자자들이 아니라면, 나갈 돈만 있지, 들어올 돈은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고, 한국 노인들의 절반은 빈곤층에 속한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아마도 노인들의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정상의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는 썰물 때면 물 빠진 갯벌인 듯했다. 서해는 갯벌이 하도 넓어서 낮에 바닷가로 나가서 바닷물 만지기가 쉽지 않은 곳이 많다. 진도는 한국의 서남쪽 끝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서해라고 하기도 남해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그러나 갯벌이 많으니까 진도는 서해 성격이 강하다고 말하고 싶다. 6년 전에 거제도와 통영에 가서 보았던 남해 풍경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나갈 채비를 갖춘 우리는 폭염이 시작되는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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